시집에서 읽은 시

죽은 뱀을 밟았다 외 1편/ 김임선

검지 정숙자 2023. 11. 7. 01:57

 

<첫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죽은 뱀을 밟았다 외 1편

 

     김임선

 

 

  무궁화가 피었습니다 부처님이 있었습니다 사과가 씨앗이 있었습니다 촛불이 머리가 타고 있었습니다 촛불에 부처님이 앉아 있었습니다 부처님 속에 사람이 있었습니다 남자 속에 여자가 있었습니다 여자 속에 남자가 있었습니다 팔다리가 없었습니다 잔혹한 입술도 눈빛도 없었습니다 물 묻은 고무장갑을 보았습니다 내 뺨에 철썩! 소리를 내며 와 닿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죽은 뱀을 밟은 것 같았습니다 시퍼렇게 소름이 돋았습니다 무궁화가 꽃이 피었습니다 꽃이 사과를 팼습니다 부처님이 아프게 비었습니다 촛불이 머리가 솟았습니다 혀가 뱀이 돋았습니다 뱀이 발자국을 베었습니다 죽은 뱀은 죽지 않았습니다

    -전문(p.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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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 찾기

 

 

  그때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가 내 앞을 지나간다

 

  혹시, 당신의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세요? 어머,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세요 도둑 아니고 강도 아니에요 당신의 왼쪽 바지 주머니라 해도 상관은 없어요 당신의 왼쪽 심장이라 해도 상관없지요

 

  사탕 있으면 한 개 주실래요? 에이, 거짓말! 나는 당신의 주머니를 잘 알아요 한번 만져볼까요? 꽃뱀 아니구요 사기꾼 아니에요 그렇게 부끄러워할 것 없어요 그럼 당신 손으로 당신 주머니에 손 한번 넣어보세요 어머, 그것 보세요 사탕이 남아 있다니 당신에게 애인이 없다는 증거예요

 

  그것이 어떻게 당신의 주머니에 들어갔는지 당신은 모를 수 있어요 누구에게나 주머니에 사탕 한 개씩은 들어있어요 사랑 말이에요 세균처럼 바이러스처럼 그 사탕 나한테 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달콤한 것을 좋아해요 유난히,

 

  망설이지 마세요 그 사탕 내게 주면 당신 주머니에는 또 다른 사탕 생길 거예요 사랑처럼 말이에요 경험해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일 맞아요

 

  사탕 대신 꽃은 어때요?

  어머, 꽃 피우는 당신 마법사였군요

 

  꽃을 나눠 가진 우리

  이제 달콤해집니다

     -전문(p. 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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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시집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 찾기』 에서/ 2022. 11. 28. <푸른사상사> 펴냄

   * 김임선金壬先/  경북 경산 출생, 1993년『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중편소설 당선 & 202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소설집『섹시하거나 은밀하거나』『봄을 여의다』, 장편소설『직지』『바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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