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형_산문집『말을 잃고 말을 얻다』/ 부안 사람들
<에세이 한 편>
부안 사람들
조재형
한 고장을 아는 법은 거기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늙어 죽어 가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고 하였다. 크고 오래된 바다를 끼고 있는 이 고장은 노을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들은 많이 하지만 꼭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더라. 이곳 사람들은 무엇보다 시가詩歌에 대한 관심이 유별나더라. 혈혈단신으로 살다가 젊으나 젊은 나이에 거문고와 함께 묻힌 일개 기생 매창의 무덤을 500년 넘게 지켜온 그들이더라.
죽어 없어진 천한 신분의 무덤을 단지 시인이 남기고 시詩 때문에 온 고을 사람이 통틀어 지켜왔다는 예를, 나는 일찍이 동서고금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매창의 흔적을 찾아보지 않고서 부안을 다녀갔다고 자랑하는 건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매창이 죽었을 때 부안 사람들은 그녀가 잊히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무언의 약속을 했다. 시가 준 울림이 이 고을 사람들에게 그녀를 벗어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그녀의 시를 읽은 사람은 누구나 그녀의 연인이 되었다. 부안 사람들에게 매창의 무덤을 지키는 일은 타인의 일이 아니다. 그녀의 연인의 된 자신들의 일이다. 매창 사후 많은 작가와 작품이 부안 사람들의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부안 사람들은 자신들이 매창과 동향인 것을 스스로 자랑으로 여긴다. 현대 첨단 문명의 엉큼한 수작도 매창과 부안 사람의 사이를 떼어놓지 못한다. 500년이 흐른 지금, 부안 사람과 매창 사이에는 그만큼 우정이 깊어졌다.
부안에 오면 누구라도 그녀의 연인이 되고 만다. 부안 사람들이 외지에서 부안을 찾는 사람들에게 매창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안 사람들의 의식 같은 것이다. 그들에게 매창은 시를 읽게 만드는 유일한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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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오지 중의 오지라고 할지라도 자기가 태어난 곳이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부안'을 송두리째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매력을 몇 개만 꼽아서 열거할 수 없듯이, 우리가 앞다투어 사랑하는 부안의 매력이 어디 한두 가지로 그칠 수 있는 곳인가?
부안에서는 특히 저녁의 표정이 유별나다. 그걸 확인해 보기에 가장 적당한 곳은 솔섬이다. 또 하나 예를 들면 천일염전을 앞세우고 저무는 제빵소다. 사람의 아들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고 하였지만, 저기서는 빵만으로 살 수 있다. 주말에는 경향 각지에서 몰려온 미식가들로 붐벼 번호표를 받아야 한다.
솔섬에서 제빵소까지는 해안 일주도로를 타면 된다. 오솔길처럼 구불한 그 명품 길을 하늘에서 굽어보면, 마치 외변산이 차고 있는 목걸이처럼 빛난다. ▩ (p. 279-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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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형_산문집 『말을 잃고 말을 얻다』 2023. 9. 25. <소울앤북> 펴냄
* 조재형/ 전북 부안 출생, 2011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누군가 나를 두리번거린다』 등, 산문집『집은 텅 비었고 주인은 말이 없다』, 현) 법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