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목 좋은 곳에 집을 얻어서/ 민왕기
검지 정숙자
2023. 10. 27. 02:35
목 좋은 곳에 집을 얻어서
민왕기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내 창문 아래로 우는 사람들이 온다
분노로도 안 되고 자책으로도 안 될 때 그렇다고 죽지도 못할 때
소리치기 좋은 자리를 골라 많은 말을 하고 간다
나는 다 듣는다 본디 내 말이었던 혀가 꼬인 말들을
매번 다른 사람이 오는 데 매번 비숫한 말을 하고
처음엔 화내다가 나중엔 모두 울고 간다
애인은 슬픈 일이라고 하지만 저 말들에 나를 섞어 떠나보내는 거
목 좋은 곳에 집을 얻어 일주일에 한 번은 속으로 같이 소리치곤 한다
생계와 관계와 사랑이 저를 치고 갔을 때
술 취한 마음은 또 얼마나 용기 있는 것이었나
품위를 말하는 사람이 싫고 위선이 보이는 사람이 싫고
오직 저런 난동 위에서 뼈다귀만 남은 마음만이 가여운 구원을 얻는다
울기 편한 귀퉁이에 집을 얻어
꽁꽁 언 겨울에도 눈물 흘리는 사람들 들러가니
여기는 사시사철 울음이 풍성한 곳, 울음이 풍요로워 떠나지 못하는 곳
-전문(p. 13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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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사』 2023-여름(114)호 <이 계절의 신작시 2> 에서
* 민왕기/ 2015년 『시인동네』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