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아직도 모르겠니 외 1편/ 전영미

검지 정숙자 2023. 10. 16. 02:02

<첫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아직도 모르겠니 외 1편

 

     전영미

 

 

      얘야, 한밤중에 손톱 깎으면 안 되는 거 모르니

      쥐가 그걸 먹고 너로 변하면 어쩌려고

 

      그래서 꼭 밤에 깎는 거예요

      이제 나를 버릴 때도 됐잖아요

 

  여기저기 툭툭 깎아놓은 손톱은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고

 

  언젠가 이해하게 될까

  왜 나는 아직도 나인가를

 

  잠깐 나무를 따라하고 사막을 흉내내고 상처인 척했지만 

  결국

  나로 남았고

 

  툭툭

  쥐를 위해 또다시

  발톱이 여기저기 튀는 밤

 

  쥐가 내 발톱을 먹어주기만 한다면

  나를 절반만이라도 나눠 가져 준다면

  내가 먼저 네가 진짜라고 우길 텐데

 

  나는 나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얘야, 아직도 모르겠니

      오래전에 네가 네 손톱을 삼켰다는 걸

       -전문(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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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시작되지 않은 오래된 이야기

 

 

  이것은 오래전부터 누군가 했던 이야기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이야기

 

  드디어 고목에 꽃이 핀다고 했지 꽃은 아직 고목을 찾지 못했고 그렇다면 내가 피는 걸로 할까 먼저 천 년을 기다려 고목부터 만들어야겠지 그런 뒤 가지 끝에 오래 품고 있던 꽃망울을 매달고 있는 힘 다해 한 송이 한 송이 나를 피워 올려야지 그때 천 년을 숨죽이며 살던 바람이 시커먼 입김을 불지도 몰라 오래 참고 있던 숨을 한꺼번에 뱉어낼지도 몰라 이제 막 퍼져나가려던 내 향기를 바꿔 악취로 바꿔 버릴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나는 바람이 되어야 할까 또다시 천 년을 기다려 고목부터 만들어야겠지 그러고 나서 순한 바람이 검은 입김 토해낼 때까지 땅바닥을 수만 번 뒹굴도록 해야겠지 지칠 대로 지친 바람이 이제 막 벙그는 꽃잎을 말려 버릴 때 그 순간 나비 한 마리 날아와 계속 맴돌지도 몰라 이미 천 년 전에 말라 죽은 고목은 흔적조차 없는데 나비는 바람에 휘감겨 계속 떠밀려 갈지도 몰라 영원히 마르지 않을 젖은 날개 하염없이 퍼덕일지도 모르지

 

  이것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오는 이야기

  여기서 끝난다고 해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이야기

     -전문 (p. 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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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시집 『아직 시작되지 않은 오래된 이야기』에서/ 2023. 9. 25. <문학의전당> 펴냄  

   * 전영미/ 경북 대구 출생, 2015년 『시인동네』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