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성분 검사서 외 1편/ 김향숙
<첫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달빛 성분 검사서 외 1편
김향숙
달빛 한 조각 책상에 올려두었다
재물대 위 광학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핀셋으로 한 자락 얇게 벗겨낸다
세포마다 애간장 타는 냄새와
백일홍의 젖은 숨소리가 묻어 있다
울음을 어루만지던 서늘한 달빛
가을 오동잎에 내려앉은
마지막 달빛은 야위었다
꽃잎에 묻은 지문과 뒤뜰을 지나간 발자국
뜨락을 쓸고 간 치맛자락 무늬도 보인다
달을 마중 나오던 하얀 박꽃과 달맞이꽃
분꽃의 숨소리도 들어 있다
달빛이 모과나무 가지에 앉아 있을 때
나지막이 깔리던 밤바람
먼바다를 건너온 돛의 거친 펄럭임과
달의 맨손에 묻은 기도의 성분을 살피는 중이다
만월로 몸을 부풀린 신음과 문양을 관찰한다
낭떠러지를 걷어 달라는
순도 백 퍼센트 염원도 내포되어 있다
달의 그늘진 뒷면엔 기도 한 줌과
당신의 빈손도 들어 있다
분석된 달빛을 기록해 놓는 밤
차면 기울고 기울면 차는 달빛은 맑고 따뜻하다
-전문(p. 16-17)
----------------------
질문을 닦다
질문을 손에 쥐고 한참 만지작거린다
이쪽저쪽 섞어가며 갸우뚱거려도
중심이 서지 않는다
눈알을 좌우로 굴려도
자꾸만 넘어지려 한다
질의는 섣부르고 답변을 성급하다
어눌한 부위에서 넘어질 뻔했고
약삭빠른 부위에서는 기어이 넘어졌다
그때마다 일어선 것은 태도가 아니라 마음
다시 질문을 펴보기 위해서였다
돌멩이에 질문을 하면
퐁당 소리를 들려주거나 동그란 파문을 보여 준다
제약 없는 질문의 경우
제한 시간의 독촉이 있다
정답과 오답을 옮겨 다니는 설문과 달리
대답의 한 짝은
왼발 오른발처럼 어색하고도 익숙했다
안경알을 닦듯 닦다 보면
초침을 끌고 다니는 질문의 일생이 보였다
의문만 모아 파는 책의 뒤편에는
대답만 모아놓은 별책 부록이 달려 있어
정답을 통해 대답을 배운다
정담과 오답이 없는 무한한 세계
가장 어려운 질문과 답은
내가 나에게 하는 질문과 대답이다
-전문(p. 32-33)
------------------------
* 첫 시집 『질문을 닦다』에서/ 2023. 9. 1. <실천문학> 펴냄
* 김향숙/ 충남 출생, 2019년 ⟪경남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공저『입김이 닿는 거리』(평사리문학상 수상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