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온_당당하게 움직이는···(발췌)/ 어느 가게 유리에 찍힌 이마 자국: 이병률
어느 가게 유리에 찍힌 이마 자국
이병률
어느 가게 유리에 찍힌 이마 자국
바깥 유리면이었다
누구를 들여다보려 했을까
혹은 무엇을 말하려다 무심결에 이마가 닿은 걸까
안쪽 세상으로 밀어놓지 못한 자국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도 닦인 적이 없다
거리가 어두워지면 안으로 엷은 불빛이 새어나오는데
그때마다 이마 자국은 한 번 더 선명해진다
이마에 유리자국이 찍힌 것이 아니라
유리에 이마자국이 찍힌 것뿐인데
그래도 된다면 자국은
그 유리면이 박살이 나서 쓸모없게 될 때까지
영원히 그대로 있을 것 같았다
이마 자국 안쪽 반대편에는 영혼의 모든 일들이
스스로를 휘젓고 있을지 몰랐다
아주 깊은 밤 가끔 차량의 걸걸한 불빛들이
이마 자국을 비추기를 마친 시각
그 이마에 내 이마를 대보았다
이마를 마주대야만 체온 안쪽의 무언가가 보일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전문-
▶ 당당하게 움직이는 행동의 시인/ 이병률이라는 이름의 브랜드(발췌) _권온/ 문학평론가
이병률은 "어느 가게 유리에 찍힌 이마 자국"에 주목한다. 단지 "유리에 이마 자국이 찍힌 것뿐인데", 도대체 무엇이 그의 관심을 끈 것일까? 우리는 이에 대한 해답을 '유리'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유리琉璃의 대표적인 성질은 투명하고 단단하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투명하다는 것은 유리를 매개로 안과 밖이 소통할 수 있음을 의미하고, 단단하다는 것은 유리를 매개로 안과 밖이 분리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시적 화자 '나'는 "바깥 유리면"에 찍힌 이마 자국에 스스로의 "이마를 대보았다" '나'는 "안쪽 세상"이 궁금하다. 시인은 그곳에 있을 "누구", "무엇", "무언가"를 알고 싶다. 누군가의 이마 자국에 '나'의 이마를 대봄으로써, 누군가의 이마와 '나'의 미마가 포개어짐으로써 이 시의 독자들은 유리 "안쪽의 무언가가 보일 거라는/ 확신"을 함께 나누는 일이다. 그 확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체온"을 함께 나누는 일이다. 또한 이병률은 우리에게 '순간'과 '영원'의 만남을 주선하고, '육체'와 "영혼"의 악수를 요청한다. (p. 시 55-56/ 론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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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인』 2023-7월(6)호 <포커스/ 발표시/ 작품론> 에서
* 이병률/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바람의 사생활』『바다는 잘 있습니다』『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등
* 권온/ 2008년 『문학과사회』로 평론 부문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