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연어의 이야기 외 1편/ 최재언

검지 정숙자 2023. 9. 30. 01:47

 

    연어의 이야기 외 1편

 

     최재언

 

 

  죽을 힘을 다해 여기에 왔단다

  그래서인지 온몸은 지치고 멍이 들더라

  해양과 내륙을 오가는 기나긴 여정

  어렵사리 만삭의 몸을 풀어내고는

  나는 너의 먹이가 되는 거지

  내가 그랬듯이 

  붙잡을새 없이

  촐랑대며 어디론가 떠날 줄 안다만

  눈망울 또렷한 내 아가야

 

  한때는 이 어미도

  깻잎 머리에 머리핀을 꽂고 놀다가

  어느 순간 엄마 생각 간절하여

  한순간도 게으름 없이 위험을 헤쳐 왔단다

  

  무섭고 두려운 건

  거스를 수 없는 물의 절벽이고

  수많은 포식자를 피해 오는 거였어

  그렇더라도 슬기롭게 헤쳐나올 내 아가야

  때가 되면 이곳으로 다시 오렴

  풀 나무 새 곤충들이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세상에 이런 곳 없더라

 

  내 고향 고창으로

     -전문(p. 9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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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인연

 

 

  바람이 불지 않는다

  언제 적에 통화했는지

  오래된 전화번호

  그 핸드폰 역사가 무지무지 궁금하다

 

  중학교 때 친한 친구였는데

  축구를 한다고 서울로 전학을 한 뒤

  이따금 TV에서 축구 경기를 볼 때마다

  그 친구 떠올라

 

  그래서 걸어볼까 하다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어

  어쩌면 받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고

  받지 않으면 내가 편치 않을 것 같다

 

  바람이 불어도

  생사가 아니, 통화는 가능하기나 할까

  망설이다가 결국 걸어 본 전화기 너머로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라는

  삭막한 목소리

  지워내야 할 아주 오래된 인연인 것을

     -전문(p. 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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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오래된 인연』에서/ 2023. 9. 15. <시작> 펴냄  

  * 최재언/ 2006년 『문예사조』로 등단, 시집『나, 있는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