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가뭄/ 심우기
검지 정숙자
2023. 9. 29. 02:22
가뭄
심우기
오래도록 저수지의 물은
저수지를 떠나본 적이 없다
둑이 터져 물고기가 저수지를 버려도
물은 한 번도 저수지를 버리지 않았다
이제는 한 번쯤은
저수지 물도 어디론가 가고 싶다
그 어디가 어딘지 모르면서
목적지를 정하여 두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인연 닿는 대로
저수지 들렀던 철새를 따라갈까
잠자리와 벌과 나비처럼 날아갈까
목 축이러 오던 노루와 멧돼지 찾아가 뛰어볼까
저수지에 빠져 헤엄치던 별들과 구름
태양이 떠나가던 그 길로 가고 싶다
저수지 물이 물고기와 어린 치어들을 남겨두고
끝내 집을 떠났다
바닥이 드러났다
-전문(p.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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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P. S』 2023년-가을(3)호 <P.S 신작시> 에서
* 심우기/ 2011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검은 꽃을 보는 열세 가지 방법』『밀사』『얼음 불기둥』, 영미번역시집『그대여 내 사랑을 읽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