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아껴 접는 밤/ 김나비
검지 정숙자
2023. 9. 21. 12:11
아껴 접는 밤
김나비
명치에 접어둔 말들이 불쑥 울대를 타고 올라오듯
접은 날들이 자꾸만 펴지는 밤이면 나는 색종이를 접어요
대문 접기*부터 시작해요
꾹꾹 눌러 접을 때마다
펼 수 없는 몸 가진 영혼을 생각해요
삐거덕 누군가 문을 열고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소리가 들려요
접은 것들은 모두 단단해요
펼쳤을 땐 깃털 같고 난로 같은 것들이
접고 나면 차갑게 뼈에 박히죠
빗물을 받아내다 접은 우산도 숨을 접은 당신의 몸도
마른 들깨 줄기 같은 손가락에 맥박 줄을 달고 검게 늘어진 밤
심박 그래프 파리하게 멈출 때
세상을 접고 돌이 된 숨
다르촉처럼 펄럭이는 오동나무 아래
접힌 숨을 심고 물을 줘요
언제부터 익혔을까요 숨 접는 법을
기억을 아껴 접다가
접히지 않는 시간은 어둠 속에 묻기로 해요
밤새 접은 파란 심장을 꿈속에 두고 오죠
펴고 접고 또 펼친 헐렁해진 종이로
새로운 대문을 접을 수 있을까요
삐거덕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아요
접힌 색종이를 명목처럼 펼쳐 밤의 얼굴을 덮어요
-전문(p. 158-159)
* 종이접기의 기본 접기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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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인』 2023-1월(5)호 <시-움> 에서
* 김나비/ 201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오목한 기억』, 가사시집『죽음의 품격』, 시조집『혼인비행』, 수필집 『내 오랜 그녀』『시간이 멈춘 그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