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사진 찍는 사람들/ 조미희

검지 정숙자 2023. 9. 14. 01:48

<시집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

 

     조미희

 

 

  무언가에 기대고 싶은 것이다

  황량한 지명이나 풍경에 기댔었던 옛 앨범은

  몇 개의 명소와 꽃 핀 계절을 소장하고 있다

 

  인간이 순간을 확인하는 역사는 얼마나 되었을까

 

  비비안 마이어*는 평생 보모로 살며 사진을 찍었지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사진은 사후에 발견되었다 그녀의 기댈 곳은 명소도 친구도 아닌 자신의 피사체였을까 어둠의 창고에서 빛으로 나온 그녀는 조명 아래서 빛났고 지독했던 어제는 사진 속에서 다행스런 날로 반짝였다

 

  초목이 과하게 아름다웠고 고양이는

  햇살 아래서 늘어지게 평화로웠다

  곳곳의 조형물들이

  당신의 미소를 붙잡고 시즌을 책임진다

  그중 당신은 어떤 지형의 모순에 넘어졌나

  내일은 자꾸 얼굴을 찡그리는

  예언들의 징후로 고약한 냄새가 난다

 

  당신은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내일의 태풍을 예감한 머리카락처럼

  당신은 당신을 내일로 보내며 살아남는다

 

  맨 처음 두 다리로 섰을 때의 나로

  그 순간으로 계속 서서 온

  어제들은 늘 다행스러운 날이었다

    -전문-

 

  * 비비안 마이어(1926-2009, 83세): 그녀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평생 보모, 가정부, 간병인을 거쳐 노숙자로 삶을 마감했다. 그녀가 죽고 2007년 존 말루프라는 남성이 창고에 있던 사진을 350달러에 샀고 이후 전시흫 하면서 세상에 알려져 그녀의 천재성을 입증받게 되었다. 

 

  해설> 한문장: 1926년 뉴욕에서 태어나 보모, 가정부, 간병인 등으로 일하며 남의 집을 전전하던 비비안 마이어(Vivian Mirer)는 2009년 노숙자로 삶을 마감했다. 그녀는 살면서 수십만 장의 사진을 찍었으나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녀가 죽고 나서의 일이었다. 이는 존 말루프(John Maloof)가 2007년 경매에 나온 비비안 마이어의 필름을 구입한 이후 사진이 범상치 않다고 여겨 2년이 지난 어느 순간부터 페이스북에 그녀의 작품 사진을 올리면서 비롯되었다. 수없이 많은 사진을 남겼으나 생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비비안 마이어의 세계가 존 말루프라는 존재에 의해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사진에 관한 정의야 다양하겠지만, 사진의 가장 큰 특징은 이미지, 그것도 손에 잡힐 듯한 실재가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데 있다. 바르트의 말을 빌리면, 사진 속에는 우리가 존재하기 조금 전에 존재했던 누군가의 개별적인 삶과 그 개별성 안에 역사의 긴장이, 역사의 분리가 포함되어 있다. 단순한 기록의 층위에서 사유될 만한 사진 한 장은 우리가 아는 모든 것(과거)을, 우리가 예측하는 것(미래)으로부터 분리함으로써 거리와 시간의 격차를 발생시키는 한편 현재를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확장한다. 이로써 우리는 사진이 구현하는 시간의 좌표 속에 진입하여 역사의 재현을 넘어 현존을 확인하게 된다.1) 비비안 마이어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기록한 행위의 의미는 이 지점에서 생성된다. (p. 시 80-81/ 론 117-118) (이병국李秉國/ 시인 · 문학평론가)

 

  1) 낸시 쇼크로스, 『롤랑 바르트의 사진』, 조주연 역, 글항아리, 2019, 203~239쪽 참조

 

    --------------------------

  * 시집 『달이 파먹다 남긴 밤은 캄캄하다』에서/ 2023. 8. 21. <푸른사상사> 펴냄  

  * 조미희/ 서울 출생, 2015년『시인수첩』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자칭 씨의 오지 입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