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라 했다 외 1편/ 김혁분
열대야라 했다 외 1편
김혁분
일몰 후의 어둠은 위험했다 한 칸을 채우면 한 칸이 비는
습지 같은 밤은 혼자 건너야 어른이 되는 거라던 언니의 방에 누우면 하나둘 별이 지고 별이 떴다
눈을 감으면 끝이라고
발끝부터 잡아 먹히지 않으려면 무얼 해보라던,
숨을 참아 볼까 얼마나 멈추고 있어야 숨어버린 아침은 미열을 넘어 어둠을 지나고 습지를 건너 은하수 별자리처럼 내려앉을까
넘어서고 넘어서도
넘치고 넘치는 어둠을 건너
어제의 시작처럼 수십 번 먹고 먹혀야 내일이 되는 거라고 축제의 그날 폭죽처럼 새벽이면 고열이 터졌다
빈방을 칸칸이 채우고 해와 달을 건너가면 살아 있기는 하는 걸까
내일, 내일은
-전문(p. 8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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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비행
바람이 분다고 했다
날아가 보자
열려 있는 문은 긴 꼬리의 누군가 들고 난 것이다
힘껏 당기고 밀어야 열리던 문은 헛스윙처럼 흔들거린다
날자
깃털 닮은 구름처럼
너와 나는 한 몸에 기생하는 계절
네가 미는 힘에 밀려 당겨야 열리던 내가 열린다
들어 온 길은 나오는 길에 겹쳐 잠시 흐려졌을 뿐
찾던 키는 늘 손에 있어
너인 나를 살려두기 위해 너를 날려 보내기로 했다
가자 파도를 넘어
날개는 바람을 가르는 비대칭의 곡선
가자
가보자
바람 좋은 날 내 안에 너를 죽이기로 했다
-전문(p. 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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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식물성의 수다』에서/ 2023. 7. 25. <한국문연> 펴냄
* 김혁분/ 충남 보령 출생, 2007년『애지』로 등단, 시집『목욕탕에는 국어사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