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2층 관객 라운지▼/ 김소연

검지 정숙자 2023. 9. 11. 02:07

 

    2층 관객 라운지

 

    김소연

 

 

  오늘은 화분의 귀퉁이가 깨졌다는 걸 발견했는데

  깨진 조각은 찾지 못했다

 

  돌돌 말린 잎을 화들짝 펴고 있는 잎사귀들

  하얗게 하얗게 퍼져나가는 입김들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이 생각을 오만 번쯤 했더니

  내가 만약이 되어간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다가

  내가 생각이 되어버린다

 

  문을 열어

  먼지처럼 부유하는 생각들을 손바닥에 얹어

  벌레를 내보내듯 날려 보냈다

 

  어둠 속에 손을 넣어

  악수를 청한다

 

  과학자의 '모릅니다'는

  설명이 가능할 이론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며

 

  노인의 식탁 옆 약통 같은 것

  기계의 뒷면으로 기어들어가 헝클어진 선정리를 시작하는 것

 

  질문에 대해 답을 하지 마

  질문에 대해 답을 해보려 노력하다가 다른 진심을 전달해 줘

 

  그럴듯함과

  그러함과

  그럴 수는 없음

 

  모두가 듣고 있다고 외치는 바람에

  외치던 사람도 계속 외치고 듣는 사람도 외치기 시작하고······

  듣기만 하는 사람 더 이상 없음

     -전문(p. 32-33)

 

    ※ 제목 끝에 [] 표시가 된 작품은 시인들이 직접 뽑은 1-2년 내의 근작대표시입니다. 이 작품은 현대시작품상 후보작으로 검토됩니다.

 

   

   ♣ 시작노트/ 나는 '너'를 어떤 단어로 기입해야 할지 결정하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쓴다. 친구라고 썼다가, 지인이라고 썼다가, 동료라고 썼다가, 쓰지 않기로 했다. 다만, 구성원이라는 말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그게 그나마 가장 가까운 단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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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3-6월(402)호 <신작특집> 에서

  *  김소연/ 1993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