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문어/ 강빛나
검지 정숙자
2023. 9. 10. 02:02
<2024, 제10회 시예술아카데미상 수상작>으로 선정됨
문어
강빛나
네 높은 지능이 연체동물 중 최고라고 했다
머리만 좋을 뿐
나는 천애고아다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사는 습성인 즉
겨울 바다 밑바닥을 헤매며 바닥의 맛을 너무 일찍 알았다
가끔 어른들은 집안을 봐야 그 사람을 안다고 했다 먹물을 뿌리고 싶었다
매일 웃는 연습을 했다
그들은 나를 바다의 현자라 불렀지만 바다에서 훨훨 떠도는 무념은 알지 못했다
먹고 사는 일에는 몸 쓰는 것이 중요해서 발바닥이 아려왔다
바위에 몸 비빌 형제 하나 없이 홀로 선다는 것
뼈대 없는 가문이란 게
마땅히 후광 받을 곳이 없다는 게
이렇게 눈시울을 붉히는 일인 줄 몰랐다
짧게 살더라도
단 한 번 눈멀었던 내 사랑 지워지지 않도록
文魚가 文語로 바뀔 수는 없을까
그 질문의 답을 듣기 위해 나는 칠흑 같은 심연을 떠돈다
-전문(p. 25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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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사람』 2023-가을(11)호 <poem & poetry/ 기발표작> 에서
* 강빛나/ 2017년『미네르바』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