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의 잠/ 정희성(鄭羲成)
물속의 잠
정희성鄭羲成
마리아나 해구 깊이로 깊숙이 가라앉습니다
레퀴엠의 속도로 당김음 없이
균일하게 내려갑니다
지그시 압점을 찾아 누르는 중력의
죽음 전 가사상태
윤회의 가설을 믿는 당신께는
편안한 잠입니다
나는 발버둥 치거나 가위눌리지 않고
조용히 아가미를 엽니다 수중호흡의 시작
기억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차분히 내려올 때 참았던 분수공을 열고
저무는 저녁바다를 들이마시는 겁니다
나는 이제야 기포를 내뿜고
물에 뜨는 잠은 겨우 시작이고
여기는 해저 천 미터 고도
이 깊은 산정에서 나는 가까스로
청맹과니의 시청각을 회복합니다
무릎을 굽히고 고요히 죽었다
되살아나는 중입니다
별이 뜨는 새벽까진 돌아가겠습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병마를 견디는 일이 얼마나 큰 두려움을 떨쳐야 하는, 절망이자 상실인지는 자신自身 외에는, 진정 알 길이 없을 터이다. 고통의 절대치를 안고 가는 일, 그러하기에 '투병'은 삶의 시작점임을 다시 거슬러가게 하는 변곡점이 되어주기도 한다.
정희성 시인의 경우, 깊숙이 가라앉는 낙하지점을 찾아 끝내 도달하는 "가사상태"는 오히려 "편안한 잠"을 받아들이게 하며 "윤회"에 대한 믿음으로 재생한다. 그는 가사假死의 순간에 이르면, "발버둥치거나 가위 누르지 않고/ 조용히 아가미를 연"다고 말한다. 차분히 "저녁바다를 들이마신"다고도 한다. "기포를 내뿜고" "해저 천 미터"에서 "조용히 죽었다/ 되살아나는" 체험을 반복하는 일은 짐작조차 어렵다. 그러나 해저로 깊이 추락하는 저 "물속의 잠"을 향하며 다시 눈과 귀가 "회복"하는 역설의 순간을 시인은 맞닥뜨린다. 그것은 신비로운 회귀, "별이 뜨는 새벽"의 귀환을 예고한다. (p. 시 22-23/ 론 116-117) (전해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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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중섭 아재처럼』에서/ 2023. 8. 10. <시산맥사> 펴냄
* 정희성鄭羲成/ 1993년『현대시』로 등단, 시집『하귤의 껍질을 벗기며』『지금도 짝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