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제한구역/ 천융희
검지 정숙자
2023. 9. 8. 01:56
제한구역
천융희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어 미안했던 우리는 머리를 맞대 마지막 여행이니 고품격 패키지로 보내드리자는 의견에 이견 없이 매듭을 지었다
때맞춰 붉은 동백은 묘사곡처럼 목을 떨구어 죽었다
바퀴 하나가 빠져 달아난 듯 지구 모서리가 잠시 기우뚱거렸고, 아버지의 시신이 전용 승강기를 타고 지상에 당도하자 붉은 카펫이 밑줄을 그으며 일반인 제한구역으로 안내했다
고별실의 점화장치가 깜빡거리고 우리는 친환경 눈물을 길어 올리느라 애써 창자를 비틀었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아 다행이라 여기며,
언뜻언뜻 울음을 감별하는 듯한 구경꾼의 시선을 피해 뚝뚝 끊어진 울음을 연결해 나갈 때 우리의,
부끄러움을 가려주시느라 온몸 불태워 활활 웃으시던
저편에 머물러
시종 흐르는 한 줄기 노을
-전문(p.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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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사람』 2023-가을(11)호 <poem & poetry/ 신작시> 에서
* 천융희/ 1965년 경남 진주 출생, 2011년『시사사』로 등단, 시집『스윙바이』, 디카시집『파노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