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욤나무/ 홍석영
고욤나무
홍석영
시골 뜰 안의 고욤나무 뒷모습이 외롭다
의미도 영문도 모른 채 심는 손자와
묘목을 심고 물을 주며 가꾼다
지친 자들의 그늘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그곳에 머물던 이들은
도회지로 가고
더러는 하늘로 가기도 하였다
그곳을 지키며
파수꾼이 된 나무가
구슬피 울고 있다
까맣게 타 들어가는 시간 속에서
나무를 심은 손자가
하염없이 늙어가고
까치 무심히 날아든다
나는,
아버지로 또 할아버지로 살아가며
고욤나무 아래에서 할아버지를 뵙는다
-전문-
해설> 한 문장: 화자가 "손자"이던 시절 할아버지와 심은 고욤나무가 "그곳을 지키며/ 파수꾼이" 되어 화자와 함께 늙어간다. 이제 그 고욤나무 아래에서 "할아버지"가 된 화자가 손자 시절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제 "지친 자들의 그늘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대로 성장하여 "그곳을 지키며/ 파수꾼이 된" 고욤나무는 "구슬피 울고 있다" 왜 그럴까. "그곳에 머물던 이들은/ 도회지로 가고/ 더러는 하늘로 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시골은 도회지로 떠난 사람들과 "하늘로" 간 사람들로 인해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극히 적다. 한때 귀촌 운동이 일어 도회지에서 시골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나 옛 시골의 모습을 되찾기에는 역부족이다. 인구는 줄고 폐가는 늘어가는 현실에 지역 소멸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모든 게 화자의 말대로 "까맣게 타들어가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p. 시 47/ 론 114)/ (허형만/ 시인· 목포대 명예교수)
---------------------
* 시집 『기다려지니까 사랑이다』에서/ 2023. 8. 10. <미네르바> 펴냄
* 홍석영/ 서울 출생, 2007년 『문학예술』로 등단, 시집 『바람도 기침을 한다』『내가 돈다, 바람개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