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3인행(果川三人行)/ 최종고
과천 3인행果川三人行
최종고
자하紫霞 선생 관악산 넘어
자하곡 단하시경석丹霞詩境石 앉아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 닦으셨고
추사秋史 선생 청계산 아래
과지초당瓜地草堂 사시며
추사체秋史體 쓰시던 과천
선인先人의 에덴길 따라
청리靑里는 무엇 이루나
양재천 물길 따라 걸으며
오늘도 이 생각 저 생각
(2022. 12. 3.)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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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한 문장: 자하 신위(1769-1845, 76세)는 누구인가. 1799년(정조 23) 춘당 대문과에 을과로 급제, 초계문신(抄啓文臣: 당하관 중에서 제술과 강독에 의해 특별히 뽑힌 문신)에 발탁되었다. 1812년(순조 12)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갔는데, 중국의 학문과 문학을 실지로 확인하면서 자신의 안목을 넓히는 기회로 삼아 중국의 학자와 문인들과 교유를 돈독히 하였다. 특히 대학자 옹방강翁方鋼과의 교유는 자하의 문학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옹방강은 추사와도 절친한 사이였다. 1816년 승지를 거쳐 1818년에 춘천부사로 나갔는데 그때 그 지방 토호들의 횡포를 막기 위하여 맞서다 파직을 당한다. 1822년 병조판서에 올랐으나 당쟁의 여파로 다시 파직된 뒤 곧 복관되어 1828년에는 강화유수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탄핵으로 2년만에 또다시 물러나 관악산 아래 자하동(지금의 서울대 캠퍼스)에서 은거하였다. 이때부터 자신의 호를 자하로 하였다.
자하는 글씨와 그림과 시에 많은 작품을 남겨 조선조 시서화 삼절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진다. 춘원 이광수도 자하를 조선의 최고 문인으로 칭찬하였다. 시에 있어 한국적인 특징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며 한글 시조와 가사를 한문으로 번역하여 중국에 알리기도 하였다. 최종고 시인은 이런 자하 선생을 본받고자 한다
추사 김정희(1786~1856, 70세)1824년에 부친 김노경이 별채인 '과지초당'을 과천의 청계산 아래 마련해놓고 한양에서 종종 가서 쉬곤 했는데 추사가 북청에서의 유배가 끝나자 1852년 8월부터 1856년 10월 10일에 숨을 거둘 때까지 4년 동안 이곳에서 말년을 보낸다. 추사도 시· 서 · 화에 있어서 그 누구의 추종도 불허했던 대가였다. 그래서 이 시의 제2연을 이렇게 썼던 것이다.
그럼 제3인은 누구인가? 바로 청리靑里 최종고 자신이다. 시인은 두 선현을 본받아 생의 말년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시 · 서 · 화에서 일가를 이루고픈 소망을 숨기지 않는다. (···) 과천 3인은 당연히 자하와 추사 청리다. 지금은 자하와 추사의 과천이지만 먼 훗날에는 자하와 추사와 청리의 과천이 될 것이다. 시인의 과천시민이 된 이후 여기저기를 다녀보고, 느끼고, 시로 쓴다. (p. 시 16/ 론 169-170)/ (이승하/ 시인·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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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과천 3인행』에서/ 2023. 8. 10. <보이스프린트> 펴냄
* 최종고崔鍾庫/ 경북 상주 출생, 2014년 시인으로 2016년 수필가로 등단하고 『괴테의 이름으로』 『최종고 시선집』『한국을 사랑한 세계의 작가들』(전3권) 『세계문학 속의 한국전쟁』 등 시집과 문학서를 냈다. 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