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투명 시인/ 전형철

검지 정숙자 2023. 8. 24. 00:12

 

    투명 시인

 

    전형철

 

 

  무서록이란 시를 썼다 상허를 알고 있었으나 두어 장 읽다 버려두었다 참회록은 읽었다 동주는 오래 두고 부러워한 처지라 그만치 쓰기 어렵지 않을까 저어했다 저어했다는 지훈의 시에서 처음 본 시어인데 내게는 흰 사슴의 선생도 푸른 사슴의 친구도 없었다

  아내는 현대소설을 전공했는데 나를 만나 소설을 쓰지 않는다 나와 사는 삶이 더 소설 같아 쓰는 죄를 짓지 않을 모양이다 문제는 친구인데 아내는 늘 당신은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아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주억댄다 관리는 내가 당하는 것 같은데, 피부관리 받고 싶어라고 말을 돌리거나 주워 담지만

  주말이면 혼자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청계천으로 스페인인가 서반아에 있다던 순례길처럼 걸으며 사람 인의 왼쪽 획은 내 몸이오, 오른쪽은 내 그림자로구나 생각했다 주위에 벌써 칭병과 와병으로 술과 담배와 멀어진 사람이 적잖아 이제 나는 아주 가끔 술을 마시면 혼잣말이 많아

  취한 밤이면 4캔에 만 원 하는 기네스 1캔만 별 보고 한 모금 달 보고 한 모금 물을 먹는 폐계酒처럼 홀짝이다가 나머지 3캔은 벤치 위에 두고 오는데 아침 출근길 벤치에 남은 캔 3병은 어디 술의 나라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투명한 하늘 아래 백석이 담고 싶었다던 갈매나무를 두고 나는 투명 시인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전문(p. 14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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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인』 2022-1월(3) <시-움> 에서

  * 전형철/ 2007『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고요가 아니다』『이름 이후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