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류수연_'함께'가 무너진 세계에서, 우리는(발췌)/ 이웃의 소음 :서효인

검지 정숙자 2023. 8. 13. 02:16

 

    이웃의 소음

 

    서효인

 

 

  안녕하세요,

  1701호의 인사에 1801호는 대답 대신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는

  근래 보기 드물게 인사성이 밝은 남성이었는데 지금은

  휴대전화에 몸뚱어리를 끼워 넣느라

  이웃의 인사도 듣는 둥 마는 둥이다

  1801호의 아이 둘은 저녁 9시부터 12시까지

  열심히 뛴다. 남자의 인사성이 그나마 

  소음을 참을 만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얼굴 아는

  사이니까

  어느덧 1801호의 무릎까지 휴대전화에 담긴다

  그의 몸이 쿠킹호일처럼 구겨진다

  휴대전화에서는 교통사고 블랙박스 영상을 보여주는

  유튜브 채널의 소리가 들렸다 차가 쿠킹호일처럼 되었다

  사고가 났다 사고가 나는 소리가

  났다 다시 사고가 났다 사고가 나는 소리가

  났다 살아 있는 모두가 사고를 당할 때까지 사고가

  났고 사고가 이어지고 사고가

  나는 소리가 나고

  소리의 진원을 찾고

  책임을 추궁하고

  비난에 집중하고

  1801호는 오른팔을 휴대전화에 욱여넣고

  왼팔을 마저 넣는 참이다 1701호는

  고민한다 그를 잡아당겨야 하는 걸까?

  머리카락을 쥐어서라도?

  그의 머리숱이 얼마 안 되더라도?

  이윽고 그는 인사도 없이 완전히 사라졌고

  하나의 휴대전화만 덩그러니 남았는데

  1701호는 그것을 주워들고 엘리베이터를 나와

  현관에 들어선다 사라진 남자의

  아이 둘이

  어김없이

  규칙적으로

  열심히

  뛰고 있었다

     -전문-

 

  ▶'함께'가 무너진 세계에서, 우리는/ -서효인 시인의 신작시에 대한 소고(발췌)_류수연/ 문학평론가

  '이웃' 연작시에서는 그 누구도 제 이름이나 존재로 호명되지 않는다. 여기서 이웃들은 그저 집의 호수로만 호출된다. 이웃이라고 호명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유쾌보다는 불쾌 속에서 더 자주 환기된다. 밤 9시에서 12시까지 정기적으로 울려대는 천장은 1801호의 아이들이 '존재함'을 환기한다. 그나마 1701호가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던 것은 1801호 남자의 인사성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사실 여기에 있었다. 1801호와 나누는 인사는 형식적인 의례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의 얼굴을 알지만, 그것은 그저 안면을 텄다는 수준의 '앎'이다. 그들은 같은 아파트 같은 동의 위아래 층에 살면서 땅과 하늘을 공유하고 있으며, 심지어 하나의 천장과 바닥으로 이어져 있다. 하지만 결코 '우리'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은 이웃이라고 지칭될 수 없는 이웃이다.

  그러므로 휴대전화 속으로 들어간 1801호의 실종은 1701호에게 사고로조차 기억되지 않는다. 인사하지 않는 1801호는 이제 더는 1701호의 이웃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의례를 지키던 1801호가 휴대전화 속으로 사라진 순간, 1801호는 오직 불쾌로만 환기되게 된다. 남자의 실종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1801호의 두 아이가 만드는 소음은 지속 중이고, 그것은 남자의 실종이 1701호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세도 아무런 영향도 남기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실종은 사고가 아닌 '박탈'이 되고 만다.

 

  세계에서 함께 산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탁자가 그 둘에게 앉는 사람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듯이 사물의 세계도 공동으로 그것을 취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사이'(in-between)가 그러하듯이 세계는 사람들을 맺어주기도 하고 동시에 분리시키기도 하는 '사이'이다.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이진우 · 태정호 역, 한길사, 1996, 105쪽)

 

  1801호 남자의 실종은 이 모든 '사이에서 그가 탈락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더욱 씁쓸한 것은 그러한 탈락이 부재로조차 넘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부재에 빈자리를 남겨두지 않는 사회, 그렇게 '너'를 박탈함으로써 '나'마저 박탈하게 만드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의 실상이다. 말 그대로 '비  존재'의 존재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존재를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1801호를 1801호라고 부르는 순간, '나'조차 1701호가 될 수 없음을 서효인의 시는 가감 없이 담아낸다. 거기에는 그 어떤 슬픔이나 공감의 여지조차 없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바라보는 오늘의 우리 세계가 얼마나 끔찍한 악몽인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p. 시 62-63/ 론 7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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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엠피플』 2023-여름(03)호 <어제와 내일 사이에서 만난 시인 / 근작시/ 작품론>에서
  * 서효인/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여수』『나는 나를 사랑해서 혐오하고』『거기에는 없다』

  * 류수연/ 2013년 『창비신인평론상』으로 등단, 공저『포스트휴먼 파노라마』『문화, 정상은 없다』『인천문학의 숲과 길』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