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날지 못하는 바람/ 지요섭
검지 정숙자
2023. 7. 24. 01:57
날지 못하는 바람
지요섭
어둠을 잘못 밟은 듯
바람이 절룩거립니다
멈칫멈칫 가다 서며
연신 뒤돌아봅니다
하찮은 개꿈은 아닐 성싶어
봉인된 지난날을 더듬어 보는데
비 오는 날이면 으레
벙거지 눌러쓰고
창밖을 서성입니다
긴히 할 말이 많은 듯
아래턱을 치켜올려
입술을 달싹거립니다
천둥 번개 치는 날이면
창문까지 흔들어대며
가슴을 덜컹거리게 합니다
저승에도 '바람의 고향'이 있을 텐데
어찌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구천의 노숙자로 헤매는 것일까
문풍지 사이로
창백한 백발의 바람이
들락거립니다
-전문(p. 9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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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3-6월(652)호 <이 달의 시> 에서
* 지요섭/ 2018년『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하늘농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