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등을 펼친 나비/ 나지환
<2023, 제3회 계간 파란 신인상 당선작> 中
책등을 펼친 나비
나지환
"너희들만 있으면 돼. 우리끼리 떠나는 거야. 청산하고, 따듯한 나라로 가자." 형이 절박하게 권유하자 배가 움직인다. 동승한 친구들은 망국의 세기를 바라보며 지긋이 웃는다. 다음 날 배가 침몰해서 모두 죽었고, 홀로 무인도에 떠밀려 온 형은 노을을 본다. 어쨌든 떠나온 거야. 떠났으니까 된 거야. 모래사장에 밀려온 늙은 가리비의 껍데기를 도로 흘려보내자 밤이 찾아왔고, 어둠을 관장하는 토속신의 눈동자 속에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이. 그건 오두막에서 잠을 설치는 형. 소중한 것을 잃어 가는구나. 형은 수집해야 했다. 아름다움의 증거들을. 이를테면 모래나 뼈. 친구들의 항해일지. 수집 생활을 끝냈을 때, 형은 서재에서 일어나 흔들리는 촛불을 바라본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규제가 없는 꿈이었습니다. 노을이 전소된 이미지 속에서, 형이 펜을 쥐는 것으로 창작의 동기가 움직인다. 그는 소설을 쓸 때 사람이나 가족보다는 창틀에 주저앉아 생을 마감하는 외눈 나비의 건축성 같은 것을 사랑하였다. 새벽에서 낮으로. 나비가 지닌 삶의 패턴이 종료되었을 때, 형은 제출한 것입니다. 그것은 세 편의 단편소설을 한 권으로 묶어 낸 그의 전집이었다.
「이럴 때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아?」의 도입부는 다음과 같다. "나만 있으면 돼. 나 혼자 떠나는 거야. 더운 나라로 간다." 그리고 주인공은 해일에 잠겨 조타실에서 죽는다. 「여름 수정」은 지중해에 서식하는 가리비가 청춘을 방황하는 이야기다. 수정은 가리비가 해갈의 순간에 껍데기를 내려 두고 우렁찬 빗줄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심정에 대한 비유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하얀 여름을 찾아가는 물컹물컹한 유령이다. 「앞서가는 공포」는 의외로 전혀 자전적이지 않다. 인공섬을 답사하는 여행자의 이야기. 부유하는 이만 평의 모형 정원을 홀로 구축했을 선조가 무섭게 느껴져서 답사를 포기하는 결말. 여행자가 섬에 오두막이나 우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그의 심경 변화가 아니라 섬이라는 유기체의 형상 변화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말은 필요하지도 않았다.
우리 형이 서해를 보며 품었던 감흥은 뭘까. 물에 젖고 마르며 삶을 앞서 나가는. 그 기분은 뭐였을까. 앞서간. 형은 죽었던 것입니다. 형의 해변이 지워진 지 오래되었다. 관짝을 닫고 반짝이는 것을 올려 두었을 때. 덮어줄 소금흙이 모자랐을 때. 장례식에 참여한 편집장의 결심으로 책의 동기가 움직인다. 눈부시고 가느다란 빛의 가지에 찔리며. 그 어딘가에서 형은 아직도 걸어가네. 수정의 섬으로 가는 배를 타려고 하네. 장례가 끝난 날. 물결. 형의 친구들은 표정이 어두워진다. 바다 비린 냄새가 나네요. 내가 말하자 슬슬 돌아가자. 형의 친구들은 답해 주었고. 알로에 주스 한 병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먹구름이 몰려왔습니다. 헐레벌떡 집에 돌아가니 서재에 꽂혀 있는 책들은 사선으로 들이친 작달비에 몽땅 젖고, 창틀에는 덩그러니 놓여 있는 책 한 권. 그것은 세 편의 단편소설을 하나로 묶어 낸 형의 전집입니다. 양장의 두꺼운 껍데기가 페이지들을 젖지 않게 하려고 비를 맞아 주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두 손으로 들어 물을 털어 내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이것만 있으면 된다. 청산하지 않는다.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펼쳐진다. 섬은 바다에 잠겨도 끝나지 않는다. 책등을 펼친 나비는 죽지 않는다."
- 전문(p. 76-77)
* 당선 소감: (p. 92-94)
* 심사 경위 및 총평 : 이현승(p. 95-106)
* 심사 소감: 장석원 김건영 정우신(p. 107-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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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3-봄(28)호 <제3회 계간 파란 신인상 당선작> 中
* 나지환/ 1995년 서울 출생, 동국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