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사과의 잠/ 김정수

검지 정숙자 2023. 7. 16. 02:27

 

    사과의 잠

 

    김정수

 

 

  사과를 벗기자 안에 낮달이 들어있었다

 

  노독이 덜 풀린 엄마를 깨우니

  그만 길이 어두워졌다 칼의

  심장을 기억하는 치욕이 뚝 끊어졌다

  

  단칼에 자르기도 하고

  서서히

  목을 겨누기도 하는

 

  경각에 달린 행로를 벗어나자 자정이었다

 

  아무도 모를 거라는 위안에

  몸의 중심이 다소 흔들렸다

 

  사소한 다툼이 반으로 쪼개져 매장되었다

  몰래, 죽은 엄마를 잘근잘근 씹어 삼켰다

 

  외출하기도 전에 벌레 먹은 죽음이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불온을 찌르자

  불결이 먼저 와 잠들어 있었다

 

  오르지 못해도 오른 것이고

  왔다 간다는 믿음도 사라졌다

 

  무딘 칼등으로 

  사과의 잠을 두드려

  벌레 같은 날들을 깨웠다

 

  무덤을 벗겨 낸 껍질이

  평상에 수북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사과의 잠」에서 '나'는 그렇게 "사과의 잠"을 두드려 깨운 기억들을 "벌레 같은 날들"이라 표현한다. 아마도 노래하는 이에게 그 기억이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심장을 기억하는 치욕"이라는 표현을 쓴 것처럼, 그 기억은 '나'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불러 일으키게 만든 어떤 사건에 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사건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는 시에서 밝혀지지 않는다. '치욕'이라는 표현을 했지만, 그 기억이 단순히 부끄러운 것이거나 감추고 싶은 이야기이기 때문만은 아닐 터이다. "잠을 두드려" 깨워야 했던 것처럼, 그 기억은 멀로 온전하게 표현하는 일이 불가능한 영역에 자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로써는 온전히 밝힐 수 없는 그 이야기를 '나'는 밝히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전하고자 한다. 그 내밀한 사연을, "사소한 다툼이 반으로 쪼개져 매장되었다/ 몰래, 죽은 엄마를 잘근잘근 씹어 삼켰다"라는 표현으로 전한다. 노래하는 '나'의 표면적인 움직임은 사과를 먹는 일로 나타나지만, 상징적 차원에서 이 행위는 동시에 "죽은 엄마"에 관한 기억을 제 안으로 삼키는 일로 이행되는 것이다. (p. 시 23-24/ 론 136-137) (김태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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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사과의 잠』에서/ 2023. 6. 30. <청색종이> 펴냄  

  * 김정수/ 1990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홀연, 선잠』『하늘로 가는 혀』『서랍 속의 사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