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척촉 외 1편/ 김박은경

검지 정숙자 2023. 7. 13. 02:14

 

    척촉 외 1편

 

    김박은경

 

 

  독이 있으니 먹지 말라는

  당신 근심이 즐거워

  부러 꽃을 먹는다

 

  이것을 척촉이라 불렀다는데

  머뭇거릴 척 머뭇거릴 촉이라니

 

  한 송이 두 송이 보기만 해도

  비틀거리던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가

  허기에 혀를 날름거리는 비탈에서

 

  미안해 꽃의 숨을 끊을 수 있고

  그렇게 이 숨까지 끊을 수도 있는데

  믿을 수 없는 나를 믿는다는 말을 믿다니

 

  즐거웠던 일이 많았는데 다 지워졌다,

  여기서부터 천천히 시작해볼까

 

  아름다워서 두려워서

  피고 지는 먼 바깥을 향하는 걸까

  세상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을까

 

  함부로 나폴대지 마

  그렇게 울지 마

 

  꽃 속은 좁고 가팔라서

  자꾸 미끄러지는

  숨이 찬데

   -전문(p. 15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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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섭씨의 음차

 

  섭씨는 스웨덴의 천문학자 셀시우스가 정한 온도의 눈금,

셀시우스(Celsius)의 이름을 한자로 섭씨攝氏라고 표기한다.

은 Cel의 음차로 물의 끓는 점을 100도로 하고

그 사이를 100등분한 눈금의 온도차를 1℃로 한다

 

 

  생면부지의 이름을 아플 때마다 불렀을까

  넘어지면 엄마, 소리치며 일어서는 것처럼

  외마디 호명을 따라 먼 손을 내밀어주듯

 

  떨어지지 않는 열이 있고

  열에 들떠 부르는 이름이 있고

  고열에 들떠서 보는 헛것이 있고

  꽃을 피워야 내려가는 열이 있고

  모두 태우고서 꺼지는 위태가 있다

 

  사람은 사랑의 기준,

  끓어오르고 얼어붙기를 반복하지만

 

  단 하나의 이름이 귀신이 것이라니

  보이는 형상마다 생시가 아니라니

  그 마음의 아득한 전생이라니

  사랑하지 않았다면 좋았을까

 

  어떤 음차는 영원히

  끝나지 않습니다

     -전문(p. 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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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사람은 사랑의 기준』에서/ 2023. 6. 30. <여우난골> 펴냄  

  * 김박은경2002년『시와반시』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온통 빨강이라니』『중독』『못 속에는 못 속이는 이야기』, 산문집『홀림증』『비밀이 없으면 가난해지고』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