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룬_몫 없는 이들의 감성을···(발췌)/ 엑스트라, 엑스트라 : 강운자

검지 정숙자 2023. 6. 27. 01:17

 

    엑스트라, 엑스트라

 

    강운자 

 

 

겨울 폭포 같은 기다림의 긴장을 놓고 개망초의 꿈을 물어봅니다 달맞이꽃의 숨겨진 가시 이야기를 들으며 풍뎅이 방아깨비와 지냅니다

 

나는 잊혀진 길입니다, 아니 그냥 길입니다, 당신 몸속의 동맥도 정맥도 아닌 실핏줄 같은 오솔길입니다

 

주인공이 시종을 거느린 귀족처럼 등장하고 질경이와 민들레를 밟고 지나갑니다 풍뎅이가 허공으로 풍뎅풍뎅 날아갑니다 방아깨비가 논두렁으로 곤두박질칩니다

 

이 순간을 기다렸지요, 사실감과 현장감이 있는 무대

 

반복, 반복, 반복을 하여 온 일인데도 불빛에 갇힌 사슴처럼 순간이 정지되고 뼈 없는 몸처럼 그들이 지나간 내 자리가 내려앉았습니다 물이 고이고 구름이 지나가고 풀씨가 몸을 기대고 개미가 집을 짓습니다

    -전문-

 

  ▶ 몫 없는 이들의 감성(Aisthesis)을 나누는 공감의 목소리(발췌)_ 이룬 

  「엑스트라, 엑스트라」에서 인간과 비인간(질경이, 민들레, 풍뎅이, 방아깨비, 사슴, 풀씨)들이 함께하는 풍경이 나타난다. 그러나 "질경이와 민들레"는 주인공에게 밟히고 "방아깨비"는 "곤두박질" 쳐지는 약자가 수난당하는 무대의 풍경이다. 또한 풍경 뒤의 "나"는 "잊혀진 길"이며 실핏줄처럼 가느다란 오솔길인 "엑스트라"일 뿐이다. "주인공"은 "귀족"처럼 우아하게 "등장"하지만 "엑스트라"인 "나"는 "내 자리"가 없는 비존재라 할 수 있다. "반복, 반복, 반복"된 일이지만 "순간이 정지되"듯 "뼈 없는 몸처럼 그들이 지나간 내 자리가 내려앉"게 되어 "내 자리"는 없어지게 된다. 하물며 "개미가 집을 짓"는데 "내 자리"가 없다니, 비인간을 인격화할 때 최소한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동등한 위치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는 사람다움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화자는 구체적으로 답을 말하지 않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듣도록 우리의 감성을 이끈다. 이 사회의 약자들     우리인 타자들, 몫 없는 '을'들의 몫에 대한 질문의 여운을 남긴다. (p. 시 103/ 론 11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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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가』 2023-여름(53)호 <이 시인을 묻는다/ 자선 근작시/ 평론> 에서

  * 강운자/ 2007년 『시현실』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시집『오래된 해석이 좋다』, 동화 스토리텔러

  * 이룬/ 2019 시작』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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