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인간이나 짐승이나/ 홍신선

검지 정숙자 2023. 6. 22. 02:04

 

    인간이나 짐승이나

         사람도 검정비닐봉지에 산 영아를 담아버린다

 

    홍신선

 

 

  갓 태어난 새끼를 어미가 버렸다. 영아는 종일 울며 어미를 부르며 찾았다. 갓난 새끼고양이는 그렇게 퇴방마루 위를 계속 기어 다녔다. 다음날 집 뒤 잔디밭에 그는 엎어진 채 죽어 있었다. 된 힘을 다해 기어간 거기까지가 삶이었다. 고개 처박고 엎어진 자리엔 선홍색 피 한 줌 말라 붙었다. 한나절 허기만을 토해 놓고 죽은 그놈은 휴지 한 조각처럼 구겨져 있다.

 

  그날 오전 나는 그 나무 마루에 솟은 못대가리만 두드려 박았다. 인간이나 짐승이나 한통속을 공연히 망치로 내리쳤다. 말법시末法時라 절손絶孫인가, 하지만 매장된 그놈은 곧 몸 해체돼 서리발로나마 버둥거리며 찾던 어미에게 가리라 저를 버린 어미 발바닥에나 가 싸늘하게 밟히리라 돌아간 수수천 원자原子들로나 그렇듯 영 다른 세상 누리며 살 것을.

    -전문(p. 45)

 

  --------------------

  * 『문학과창작』 2023-여름(178)호 <원로 중진 시인 신작시> 에서 

  * 홍신선/ 1965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직박구리의 봄노래』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