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아내의 설거지 외 1편/ 송영신

검지 정숙자 2023. 6. 20. 03:13

 

    아내의 설거지 외 1편

 

    송영신 

 

 

  소파에 모로 누워 TV를 본다

  설거지하던 아내 

  어느새 옆에 다가와 눕더니 날 끌어안는다

  소리 죽여 울고 있다

 

  일상의 가장 친숙한 일로도

  잠시 미뤄두지 못하는

  떨림

 

  이러지 말자 이러지 말자 고개를 가로저었을 것이다

  씻어보자고 여기저기 세제를 뿌리고

  수세미로 닦았을 것이다

 

  솟아오르는 생각

  온종일 저린 가슴 한편

  잊어보자고 물을 뿌렸을 것이다

 

  멈춰져 있는 아내의 시계가

  허공에 발붙인 듯 무너지는데

  삶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습격

 

  무엇으로도 닦아낼 수 없는

  그리움엔 안전지대도 없는 것인가

 

  흐려진 TV 화면에 시선을 둔 채

  아내의 등을 쓰다듬는다

 

   TV에 눈 두는 것이나

  손에 몰 묻히는 것이나

  쓸데없이 딴짓하기는 매한가지

 

  멍한 마음이 모래성같이 허물어지는 것

  저나 내나 무엇이 다르랴

    -전문(p. 1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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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춘선 폐역에서

 

 

  #1. 하행선 완행열차  

 

  옷깃을 푼 청춘들

  청량리역 시계탑 앞에 만발하고

  깡통 같은 객차 안

  열꽃처럼 들떠 흥얼거리더니

  늦은 밤 민박촌의 취기로 비틀거렸다

  청춘을 실어 나르던 낭만열차는

  때론 입영열차 되어

  눈물 젖은 손수건으로 흘들리고

 

  #2. 상행선 새벽기차

 

  무거운 눈꺼풀로 만나는 푸른 견인차 

  기차에 오르는 교복과 책가방, 봇짐과 광주리,

  무임승차한 동네 소문들

  기차는 우리를 같은 곳에 내려놓지 않았다

  선로의 평행은 동행이 아닌

  영원한 어긋남이었을까

 

  세월을 내려놓고 가버린 후

  소리 내어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단추처럼 매달려 경춘선을 잇던 간이역들

  곰삭은 침묵, 단 몇 줄의 열차시간표, 역전 마당의 느티나무

  물안개로 남아 지난날을 지키고 있을 뿐

 

  왜 과거는 아름다울수록 아픈지

  왜 추억은 떨어지는 단추처럼 심장을 툭,

  건드리고 가는지

 

  플랫폼에서

  저 멀리 녹슨 선로를 지켜보노라면

  소실점을 끌며 기차가 들어오고

  홀연, 젊은 날의 나를 내려놓을지 모른다

 

  지키지 못한 나와의 약속 낯 뜨거운데

  반가운 듯 손잡을 수 있을까

     -전문(p. 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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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기차는 우리를 같은 곳에 내려놓지 않았다』에서/ 2023. 5. 31. <상상인> 펴냄  

  * 송영신/ 2021년 『문학광장』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