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조_불확실성에 대한 인식과···(발췌)/ 눈 위에 쓰 내 이름 : 김영찬
눈 위에 쓰 내 이름
김영찬
눈 내리는 거리를 걸으면 누가 내 이름을 부른다
기명찬 영찬 영차영차 영찬아
기똥찬 내 이름을 부른다
눈 위에 눈이 내리고 눈 아래 눈이 녹고
내 이름 눈송이 펄럭여
부풀어 오른다
눈사람으로 태어나
눈 녹는 길거리에서 눈앞에 펼쳐졌던 일들을 골똘히
눈길 거두어 뒤돌아보면
눈사람이 된 내가 명찰을 달고 길 위에 서 있다
눈이 나린다 눈 쌓인 눈 위에 눈이 나린다
눈 위에 찍히는 내 이름
눈이 녹고 내 이름이 녹아 사라진다
-전문-
▶불확실성에 대한 인식과 시적 진실(발췌) _김성조/ 시인, 문학평론가
'내 이름', 그것도 "눈 위에 쓴 내 이름"은 특별한 의미배경을 함축한다. '눈', '눈사람'은 고정화된 사물이 아니라, 녹아서 없어지는 특징을 안고 있다. 따라서 "눈 위에 쓴 내 이름"은 곧 와해되고 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 "누가 내 이름을 부른다"에서 알 수 있듯이, '누가'를 대변하는 인간적 관계성 속에서 주어진 '내 이름'은 언제든 외부적 상황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눈사람이 된 내가 명찰을 달고 길 위에 서 있다"에서의 '나'는 이러한 속성을 명징하게 자각하고 있다. '이름'은 온갖 지위와 계급, 명예와 불명예를 넘나드는 사회적 굴레를 안고 있다. '이름'에 대한 집착이 강화되고 지나친 욕망에 침잠하게 되는 것도 여기에 있다. 위 시는 '이름'에 대한 허상과 모순적 일면을 일깨우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는 곧 시적이든, 현실적인 것이든 성찰적 자아인식을 그 매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p. 시 177/ 론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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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2023-봄(89)호 <신작 소시집> 에서
* 김영찬/ 2002년 『문학마당』에서 문단활동 재개, 시집『불멸을 힐끗 쳐다보다』『투투섬에 안 간 이유』등
* 김성조/ 1993년 『자유문학』으로 시 부문 & 2013년 『미네르바』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그늘이 깊어야 향기도 그윽하다』『새들은 길을 버리고』『영웅을 기다리며』, 시선집『흔적』, 학술저서『전봉건』(공저), 『부재와 존재의 시학』『한국 근현대 장시사長詩史의 변전과 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