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그의 바닷가에서 그가 사라지는 순서/ 정윤천
검지 정숙자
2023. 6. 13. 00:32
그의 바닷가에서 그가 사라지는 순서
정윤천
그가 사냥개에게 목덜미를 물렸습니다
사냥꾼이 개와 함께 그를 끌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식구들이 일을 맡아 저녁을 준비합니다
썰매견들이 그의 고기를 맨 먼저 받아 듭니다
사냥개가 그 다음 차례입니다
사냥꾼이 세 번째로 받습니다
집 안의 노인에게로 차례가 이어집니다
어린 순서부터 나누어 줍니다
여자들이 가장 나중에 남아있는 그를 치웠습니다
강가의 미루나무 꼭대기에 닿고 옥수숫대 줄기와 이파리들을 스치고 어린 산딸나무 가지를 적시다가 구절초 꽃잎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빗방울이 강물 속으로 사라지는 순서입니다
그린란드 바닷가에서 바다표범 한 마리가 사람들의 저녁 속으로 사라지는 순서는 세상의 여러 곳에서도 무척이나 닮았습니다
-전문(p.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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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2023-봄(89)호 <신작시> 에서
* 정윤천/ 1990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1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흰 길이 떠올랐다』외 5권, 사화집『십만 년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