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내가 인간인 것이 싫어질 때/ 김상미

검지 정숙자 2023. 6. 3. 02:37

 

    내가 인간인 것이 싫어질 때

 

     김상미

 

 

  나는 바다로 간다

  기댈 곳이 바다뿐이기에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있으면

  바닷가에 서 있으면

 

  나는 사라지고

  나는 보이지 않는다

 

  온통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 유유히 흐르는 구름 떼

  푸른 빛 바다뿐이다

 

  하염없이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나는 보이지 않고, 바다만 있다

 

  내가 보이지 않는

  그게 너무 좋아 자꾸만 바다로 간다

 

  바다에 있으면 나는 공기가 되고, 파도가 되고, 구름이 된다

  모래밭에 앉아 하늘을 보면

  하늘 또한 더없이 푸른 바다다

 

  나는 꼼짝 않고 그 모든 것들을 느끼고, 느끼고, 느끼고

 

  그러다 내가 조금만이라도 움직이면

  그 모든 것들이 날아가 버릴까 두려워

  오랫동안 그 바다에 포개지고, 잠기고,

  그 바다와 하나가 된다

 

  마치 내 조상이 바닷속 한 물고기인 듯 

  마치 내가 바닷속 한 물고기의 딸인 듯

      -전문 (p. 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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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시 전문지 『사이펀』 2023-여름(29)호 <주목, 이 시인을 만나다/ 신작시>에서

  * 김상미/ 부산 출생, 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검은, 소나기 떼』『잡히지 않는 나비』『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