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P의 배경 외 1편/ 강주

검지 정숙자 2023. 5. 30. 02:11

 

    P의 배경 외 1편

 

    강주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우리를 잃어버렸다

  위험한 우연이 계속되었다

  자연은 훼손되면서 견뎠고

  알아듣지 못할 중얼거림이 귓전에서 맴돌고

  접착제로 붙여 놓은 전단지는

  반복해서 찢어지고

  같은 자리에 덧붙여졌다

 

  서쪽은 오른손에서 멀고

  마지막 빛을 주워 서로에게 던졌을 때

  결국 빛에 관한 이야기만 남았다

  P의 빛은 시가 될 수 있을까

 

  활엽과 침엽을 지닌 한 그루이면서 여러 그루이고 겹쳐 있으면서 독립적인 종자種子로 P를 이해한다. 상상하지 않을수록 상상력은 반항적이고 젖은 문장들은 더 깊은 곳을 찾으므로

 

  레는 슬픔. 레는 멀리 짚어야 하는 애인이어서 슬프고 몇 개의 레는 도와 미로 사이에 놓여

  우리는 함부로 헤어지고

  서로를 잃어버린다

 

  서쪽엔 너의 눈동자가 무성하다

  약속은 눈동자여서

  서로의 징후로서

  우리는 해 질 녘에 서 있다

 

  서쪽이 사라질 때까지 P는 시를 쓰고 마침내 P는 서쪽과 겹쳐진다

       -전문(p. 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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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가지 기분과 나머지

 

 

  너와 나는 하나로 섞인다. 크기와 모양이 달라진 새로운 하나가 생긴다. 이것은 우리의 의도인지 모른다. 꼬챙이에 가지런히 꿰어본다. 번갈아 가며 다시 하나씩 분리되는 너와 나는

 

  변화무쌍한 이야기. 층층나무의 일종이다. 너와 나의 기울기 속에 플러그를 꽂는 손이 있다. 너는 유리컵을 쥐고나는 유리컵 속에 손을 넣는다. 손가락으로 가득 찬 유리컵은 아름답다. 무엇이든 가리킬 수 있는 컵이자

 

  무엇이든 거부할 수 있는 컵이므로

 

  스스로 깨뜨릴 수 있다

  빗소리처럼

 

  갑자기 새벽 3시( 국지성 호우)처럼. 구부러진 손가락을 하나씩 펼치는 동안 어느새 안녕. 보라 가까이, 좀 더 가까이 보라. 노트 묶음 G:

 

    0

 

  무궁무진한 이야기. 심벌즈로 너를 시작하고 너를 잊을 때까지 로그인. 넒어지는 우리는 몰라서 서로에게 타인이고 하룻밤이 지나면 (하룻밤은 짧지만 깊고 위험하지)

 

  시든 손가락은 난형으로 어긋나며 0이 자라는 층층나무와,

    -전문(1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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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99가지 기분과 나머지』에서/ 2023. 5. 25. <달을쏘다> 펴냄  

  * 강주/ 강원 동해 출생, 2016년『시산맥』으로 등단, 시집『흰 개 옮겨 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