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의 고통은 인간을 겸손하게 한다/ 김효숙
신체의 고통은 인간을 겸손하게 한다
김효숙
신체의 고통은 인간을 겸손하게 한다. 타자가 모르는 아픔을 겪으면서 다시 한번 겸손을 배웠다. 인간은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존재자다. 그러나 목발에 의지하여 걸으면서 지표면의 기울기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4족 보행자는 하늘을 올려다볼 수가 없었다. 동물처럼 기어 다니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고유한 인간성을 거꾸로 중명한 주제 사라마구 소설의 의도가 절절히 가슴을 쳤다. 다행히도 글쓰기는 머리와 손의 협업으로 가능했다. 가만히 모셔 둔 다리를 자주 내려다보면서 쓰다듬어 주었다. 사라마구 소설의 여인처럼 내가 보아낸 것들을 부지런히 글로 풀어냈다. (p. 8 / '책을 펴내면서' 中)
인구 비례로 보거나, 타 장르와 비교해 보아도 우리 문단에 시인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시인공화국'이라 부르는 곳에 우리는 몸담게 된 것이겠지만, 정작 대표시 한 편조차 없는 시인이 많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이 문장은 앞으로 수정될 것이다. 대표시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직 독자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p. 172)
어떤 시의 시대는 가고 다시금 다른 시의 시대가 온다. 그중 어떤 시는 그 본성이 좀체 변하지 않기도 한다. 새로운 시는 그 형식의 새로움으로 실험시라는 이름을 얻고, 새로운 내용은 언어의 새로움이 추동한다. 따라서 시의 시대가 가버린 때는 없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시대가 바뀌어도 이 세계와 인간의 본질이 불변하는 곳에 관심을 둔 시인이라면 그에게는 변하기 어려운 내면이 있다. (p. 201)
요즘의 듣는 시는 젊은층이 읊조리는 '랩'일지도 모른다. 누가 시를 읽는가. 시를 쓰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순수 독자가 시를 읽는 경우는 드물다고들 걱정이 섞인 실망을 보탠다. 당대적 정신으로 시를 쓰지만 시의 효능과 순수 독자의 요구가 일치하기란 어렵다는 얘기다. 더구나 독자들이 듣고 싶어하고 읽고 싶어하는 서정시는 남다른 경험을 이미지와한다 해도 상투성에 매몰되기 쉽다. 장대한 이 세계를 대면하는 일을 그만두고 얄팍한 내면에 안주할 때 더욱 그러하다. (p. 219)
인간에게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끝없이 방출되고, 시간을 잃어버리면서도 우리는 기억을 신뢰한다. 한 줄에 배열할 수 없는 기억과 기대들에 끼인 채 그렇게 한다. 그러나 시간 속에서 기억은 분열하고, 시간은 생명체에게 자기보존에 적합한 환경이 되어주질 않는다. 어떤 이는 시간의 작용을 '나이 들어간다'고 말하고, 또 다른 이는 '늙어간다'고 말한다. 변화의 열망이 뜨겁던 시절에는 시간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이를 자각하는 자에게는 더욱 빤히 시간이 닥쳐든다. (p. 222)
시인은 때때로 이렇게 일상을 떠나 목가풍 노래를 부른다. 서정 시인이란 자신의 쓰는 언어가 문자로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영원히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들일지도 모른다. 의미를 앞세우지 않고 소리만 울려 나온다 해도 충분히 하나의 노래일 수 있는 시들, 묘사나 비유법에 충실하기보다 소리의 울림과 확산으로 존재하는 시들이다. 목소리에 시를 얹어 그것을 널리 확산시키려는 것이 서정시인의 꿈이다. 그러나 현대의 서정시가 유포되는 데는 다른 형식이 추가된다. 시를 보면서 들으려는 현대 서정시의 독자(청취자)에게는, 낭송자의 목소리와 시 텍스트를 동시에 공감각할 수 있는 매체가 매우 가까이에 있다. 동영상은 듣는 언어를 이미지와 결합하도록 조성한다. 읽는 시이거나 듣는 시이기만 하다면 어떤 감각은 결핍되지만, 동영상은 그것을 메운다. (p. 232)
우리의 의식을 처음으로 강타한 문장들은 기원의 모습으로 여전히 시 안에서 살아간다. 문장을 사랑하다 죽어 문장 한 줄로 기억되는 어느 시인의 문장을 증명하는 이들도 동시대를 살아간다. 때문에 세상의 문장들은 결코 기계가 찍어낸 모형일 수가 없다. 이들이 있는 한 문장은 도처에서 기어히 폭발한다. (p. 338)
그간 정상성의 범주로 알아 온 현실은 이제 현실이 아닌 것이 되었다. 이는 우리의 인식이 바뀌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진행하는 현상이다. '화성작가' 시인들의 현실감각은 많은 경우 그러한 정상성을 상실한 현장에 맞춰져 있다. 예컨대 기후위기 · 생태 · 종말 · 소외계층 · 방역 · 비대면 등과 관련한 인식들이다. 이 문제들은 이전 정상성의 궤도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고 바라보도록 현실안을 요청한다. 기후 문제만 하더라도 그동안 우리는 애써 '정상'을 내면화하려 했다. 그 위험성을 유보하면서 굴뚝산업에서 벗어난 경제를 자축했고, 화석경제가 일군 산업 성장이 지속되면서 인류가 영원히 번영하리라는 꿈을 꾸었다. 코로나19 펜데믹은 그 도상에서 맞은 위험이고, 지금은 그것을 벗어나려는 기획 아래 감염병의 원인자를 기후 문제로 지목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결론을 명쾌하게 내릴 수 있는 근거는 사실상 먼 데 있지 않다. 생명 기원의 역사를 거슬러갈 때 만나는 인간 바깥의 생령현상에서 이 시대의 위험을 읽어낼 수 있다. (p.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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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숙 문학평론집 『눈물 없는 얼굴』 2022. 10. 18 <상상인> 펴냄
* 김효숙/ 제주도 출생, 2017년 ⟪서울신문⟫으로 평론 부문 등단, 평론집『소음과 소리의 형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