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 외 1편/ 김진명(金鎭明)
덫 외 1편
김진명金鎭明
청계산 왕거미 한 마리가 시간을 죽이며 기다린다
가지와 나뭇잎 사이에 방패만한 거미줄을 비스듬히 쳤건만 파리 한 마리 걸리지 않았다 거미의 교묘하고 처절한 덫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일까 미풍에도 그의 덫이 흔들리고 햇살에 반짝인다 어느 정도 어느 생명도 호락호락 그의 목숨을 내어줄 리 만무하다
거미는 거미줄을 다시 치기 시작한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팽팽한 그물이어야 한다 바람이 함정이고 덫이다 바람을 따라가면 죽음이 기다린다 햇살에도 빛이 투과되는 그물이어야 한다 햇살이 함정이고 덫이다 햇살을 따라가면 죽음이 기다린다 거미의 덫에 생사가 넘나들고 있다 누구에게도 운명처럼 다가오는 덫이 눈앞에 있다
-전문(p.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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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땅의 향기
이른 봄, 소가 밭을 갈 때 생땅냄새가 났다
마치 땅 속 깊은 곳에서 얼음이 사각사각하는
동치미를 꺼내 쭉 마실 때의 그 향기다
이른 아침, 쇠죽 쑤는 볏단에서 생땅냄새가 났다
퇴근하신 아버지의 하얀 봉투 속
앗 뜨거 앗 뜨거 군고구마 그 향기다
방과 후 어둑해져야 돌아온 막내 머리에서도
들에 갔다 돌아오신 어머니의 품에서도
살아생전 잊을 수 없는 그 향기가 났다
땅은 내가 돌아가야 할 고향
고향집 문틈을 넘어오는 생땅의 향기
벌이 꽃향기를 따라가듯 어찌 잊으리오
- (p.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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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생땅의 향기』에서/ 2023. 5. 1. <문학아카데미> 펴냄
* 김진명金鎭明/ 충북 충주 출생, 2017년『한국문학예술』로 등단, 시집『빙벽』『너에게 쓰러지고 싶다』『유목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