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협 새 집행부에 바란다(부분)/ 유자효
<권두언> 中
문협 새 집행부에 바란다(부분)
유자효/ 시조시인 · 한국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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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늦게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 작가들이 늘고 있습니다. 60대, 70대에 등단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는 자연수명이 늘어나고 생활 수준이 높아진 까닭이 아닌가 합니다.
서울 중구문화원에서 시 창작 교실을 할 때, 첫 기 수강생 가운데 80대의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수필로 이미 등단한 분이었는데, 시를 배우려고 나온 것입니다. 남편을 사별하고 문학으로 제2의 인생을 열어가고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몇 달 뒤에 고교 동창생 한 분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유명한 문인의 따님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문학평론으로 한 획을 그은 분이지만 따님은 신산辛酸한 삶을 사신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단 시 공부를 시작하자 아버지의 문학적 역량이 딸에게서 나타난 듯 대단한 진경進境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이 고교 동창생들은 또 한 친구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남편을 잃고 집에만 박혀 있어서 나오도록 했다는 말이었습니다.
세 여고 동창생들은 매주 작품을 갖고 나와 합평에 열을 올렸습니다. 단 한 주도 빠지지 않는 혼신의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5년여가 지나자 차례차례 시집들을 내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시 공부를 시작했던 분은 두 번째 시집까지 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세 분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고는 몇 달 간격으로 차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세 분의 병문안을 다니다, 세 분의 장례식을 다니는 기가 막힌 체험을 했습니다. 얼마나 우정이 두터웠으면 떠나는 길까지 함께한단 말입니까? 다행하게도 세 분은 돌아가시기 5, 6년 전에 시를 만나 시인이 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노년 문학은 이런 시간의 절박성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작품의 몰입도와 호소력도 젊은 시인의 경우와 현저히 다릅니다. 우리는 한국 문단의 이런 변화에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당부까지 문협의 새 집행부에게 그리고 싶습니다. (p. 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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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2023 - 5월(651)호 <권두언>에서
* 유자효/ 1972년 『시조문학』으로 등단, 시집 『세한도』 외, 현) 한국시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