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배웅/ 권상진

검지 정숙자 2023. 5. 17. 01:49

 

    배웅

 

    권상진

 

 

  진료 소견서를 받아 들고 가는

  4번국도는 어느 행성으로 가는 긴 활주로 같았다

 

  불쑥 이정표들이 나타나

  손짓을 하더니 금세 길의 뒤편이 된다

 

  집과 동네와 사람들이 멀어져 간 사이드 미러에

  저녁이 배웅처럼 따라붙는다

 

  길가 쉼터에 차를 세우자

  코스모스 화단에 걸터앉던 엄마

  온통 붉은 서쪽을 바라본다

 

  노을 쪽에서 온 사람처럼

  노을 쪽으로 가는 이처럼

 

  노을처럼

 

  사위어 가는 당신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그러쥔 옷섶에서 구름의 멍울들이 잡히고

  눈 뜨면 그 속에 가득한 별들

 

  하늘 하나를 통째로 품고 사는 사람이 있었다

 

  몸속 먹구름이 어느 기억을 지나고 있는지

  내 눈동자 속으로 뚝뚝 떨어지던 별

 

  입술로 미끄러져 내린 당신 별은

  밤새도록 짜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존재와 존재가 겹치고 접히면서 바라보게 되는 장엄한 우주 속 사금파리 같은 별들의 길에 마음을 내맡기면, 하루하루 덧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소한 느낌들조차 함부로 재단하기 힘든 법이다. 권상진은 미처 여백에 얹히지 못할 말들조차, 그 언어적 행보를 가능하게 한 생활세계의 중요성을 잊지 않는다. 그는 현실을 이룩하는 것이 사고의 역사가 아니라 오히려 살아 파닥거리는 인간 생명의 끈질긴 노동임을 잘 알고 있다. 노동으로부터 창조되는 문화에는 인간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면서 반성 의식을 풍부하게 하는 정신성도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정신성은 사람과 사물, 존재와 타자 등에 대한 깊은 의식을 바탕으로 해서 태어나는 숭고한 감정을 배태한다. 그것은 언어와 존재의 관계가 어떠한지, 또한 자기의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시적 세계와 비전을 낳는지 보여 준다. 그래서 시를 창작하는 행위는 고도의 자기반성과 의식 없이 수반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시가 시인의 자기의식의 생성부터 마침내 창조하게 된 새로운 세계까지 샅샅이 살핀 눈동자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그러한 배경에서 별을 띄우는 고독한 실천이자 탄식이다. (p. 시 42-43/ 론 125-126) (정훈/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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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노을 쪽에서 온 사람에서, 2023. 4. 13. <걷는사람> 펴냄

  * 권상진/ 경북 경주 출생, 2013년 <전태일문학상> 수상으로 작품 활동 시작함, 시집『눈물 이후』, 합동시집『시골시인 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