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사랑하지 않는 나의 이방인/ 김이듬

검지 정숙자 2023. 5. 13. 02:54

 

    사랑하지 않는 나의 이방인

 

    김이듬

 

 

  개업하던 날엔 손님들로 북적였다

  지나치게 많은 화환 때문에 식당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엄청나다! 저 가게 사장은 뭐 하던 사람일까? 친구랑 지인들이 무지무지 많나 봐"

 

  너는 혼잣말을 내뱉았다

  너는 유일하게 내가 혐오할 수 있는 자

  메뉴 하나 고르는 데도 우리는 갈등하며

  착각에 사로잡혀서 싸운다

 

  내 평생 소원은 나를 미워하지 않는 친구 한 명 갖는 것

 

  사나흘 지난 오늘

  저녁 시간인데 식육식당엔 주인 내외뿐이다

 

  시든 화환을 보며 우리에게 지인은 많아도 친구가 없었음을 문득 깨달을 때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고 싶을 때

 

  "동행이 오면 주문하시겠어요?"

  물휴지를 놓으며 주인인 묻는다

 

  동행이 있었던가? 적이 아니면 모두 다 친구라고

  너는 그렇게 믿었던 때가 있었다

 

  "아뇨, 혼자 돼지고기 2인분 먹을게요."

 

  이 저녁은 예전에 본 장면 같다 낙엽은 왜 핏빛이며 고기는 왜 낙엽살인가

  묵직한 안개가 내리깔린 거리를 바라본다

 

  지금 너는 내 앞에 털썩 앉는다

  너는 선글라스를 꼈고 밑단이 너덜너덜한 코트를 입고 있다

 

  "연일 악천후야. 기아 상태로 쓰러질 때까지 나를 방치하는 줄 알았어."

  "맙소사, 어딜 그리 쏘다녀?"

 

  우리의 대화는 거의 늘 이런 식이다

  너는 태만하고 맹목적이며 변덕스러운 인물로서

  내가 혼자 먹는 밥이 서글프지 않을 때 튀어나온다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후회하며 밥을 먹은 너

  물끄러미 나를 보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너

  거절 못 하는 나 대신 분노하는 너

  너는 유리를 깨뜨려야 꺼낼 수 있는 영정 사진 속 얼굴 같다

 

  어느 날 내 육체가 사라져도 너는 공기처럼 떠돌 거라고 믿지

  세탁소에서 찾아온 옷의 비닐처럼 나를 뒤집어쓴 채

 

  "남은 거 좀 싸 가도 될까요?"

 

  어금니가 한 개 없고 잇몸도 나쁘다

  나는 혼자 충분히 늙었다

  이렇게 살다가 고독사할 게 자명해

 

  탄식을 주워섬기는 너는 내 안의 방랑자

  우리는 불화한다

 

  이따금 내가 내린 다음 정류장에서

  길을 잃곤 하는 너

  너는 나보다 어리석고 순진하지

 

  죽을 때까지 나를 감시하겠지만

  누구보다 나를 잘 모르는

 

  너를 사랑한다고 노래하게 되면

  더 멀어지지 않을까

 

  내게도 절친이 있다고

  이 밤 창가에서 흘러내리는

  월광에도 휘발하는 네가

  나였음을 증명할 수있을까

     -전문(p. 11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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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2-겨울(27)호 <poem> 에서  

  * 정현종/ 1965년『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사물의 꿈』『나는 별아저씨『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한 꽃송이』『세상의 나무들』『갈증이며 생물인』『견딜 수 없네』『광휘의 속삭임』『그림자에 불타다』, 시선집『고통의 축제』『이슬』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