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여중생/ 최설

검지 정숙자 2023. 5. 9. 01:25

 

    여중생

 

    최설

 

 

  하천에서 실종되지 않았으며

  외모를 자랑스럽게 여겨 씩씩하고

  집단 폭행에 휘말리지 않아

  혼자서도 무리들과 정답고

  스트레스에 떡볶이고

  담배는 손대 본 적도 없음

  낮길이고 밤길이고

  음악을 들으며 걷는 발자국

  누구도 만지지 않는다

  구석진 곳에서도 늠름한 내게

  가출이라니 이 집의 중심은 나

  제사상 가운데 우뚝 서서

  조상님께 꿈을 말씀드린다

  실력으로 승부하기 위해

  오늘도 새벽을 밝히는

  이 목소리로

  세상을 꿈꾸기 위해

  내일을 말하는 소녀

  성희롱 성폭력 성매매 없는 세상

  팔목엔 칼자국 말고 온기를

  숏컷도 바지도 노 메이크업도 박수를

  오늘도 피어나는 여중생

     -전문-

 

    * '여중생'으로 검색한 결과 1년 뉴스의 95% 이상이 실종, 집단 폭행, 촬영 유포, 가출, 강간 성회롱 성추행 성매매 등 성범죄 관련 내용으로 '남중생'으로 검색한 뉴스와 비교했을 때 양적으로도 100배가 넘는다.

 

  해설> 한 문장: 나는 최설의 청소년시집을 읽고 아이들의 일상과 그 마음을 조금 엿본 듯하다. 그건 그들의 언어와 태도를 가장 가까이 바라보고 오랜 시간 함께한 이가 목격한 것이어서 생생하고 아프다. 여러 아이들의 삶 모습을 두루 바라볼 수밖에 없는 여중 선생님으로서 최설은 그들의 목소리를 실감 나게 되살리고 있는데, 그 목소리 안에는 여성 어른이 아닌 여중생 사람의 목소리와 자세가 있다. 그들 일상의 바람과 꿈이 배어 나온다. 학교생활의 어려움이, 친구와의 갈등이, 가족의 죽음이 여중생 사람의 목소리로 흘러나온다.

 

      *

 

  여중생은 인간의 성장기 가운데 사춘기를 지나는 여학생이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지켜가야 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면, 우리 사회 여중생들은 안타깝게도 그걸 수행하기 어려운 자리에 놓여 있다. '피어나야 할' 존재들인데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 다 같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이 시집이 여중생, 여학교를 다니는 딸들의 존재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그들을 지켜 주고 싶은 어른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으로서 이 용기와 노력 덕분에 우리는 현재 우리 사회 여중생의 자리를 생각해 보고, 그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미래의 자리를 적극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p. 시70-71/ 론 110 * 118) (이근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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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핑크는 여기서 시작된다』(창비 청소년 시선)에서/ 2023. 4. 14. <(주)창비교육> 펴냄

  * 최설/ 2015년『현대시』로 등단, 청소년을 위한 교과서 시 읽기 『윤동주 詩 함께 걷기』(2017,서정시학)을 펴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