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나석중
밀양
나석중
아픈가?
만어산 돌띠를 두른 허리
무량, 무량 닫은 문
누구 있소?
두드리면 우주의 목청 알 수 없지만
다시 캄캄 걸어 잠그는 문, 문······
그렇다고 잠만 자는 돌들은 아니어서
붙박이 돌강의 마음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이건 육천오백만 년 전 솟아오른 아우성
그만큼 침묵도 오래 닳고 닳으면
맑은 종소리를 내는가
종석鐘石이라 돌강石江이라 부르는 너덜겅
그저 상상은 억측일 뿐이다
눈멀고
귀 닫고
입 다문다
-전문-
해설> 한 문장: 경남 밀양에 가면 만어산이 있고, 만어사라는 절이 있다. 만어사는 삼국유사에도 등장하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만어사萬魚寺! 그대로 해석을 하면 만 마리의 물고기가 있는 절이다. 절에 물고기가? 절은 보통 산에 있는데 그럼 산에 물고기가 있다는 말인가? 물고기는 물에 사는데 산에서 살 수 있을까? 산에 살고 있다면 만 마리의 물고기는 어디에 살고 있을까?
만어사에는 어마어마한 너덜겅이 있다. 돌무더기가 있다. 돌이 된 수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만어사에 얽힌 설화가 있다.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수명이 다한 것을 알고 무척산의 신승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신승은 가다가 멈추는 곳이 그대와 인연이 있는 터라고 일러주었고, 이윽고 왕자가 길을 떠나니 수많은 종류의 고기 떼가 그의 뒤를 따랐다. 길을 가던 도중 잠시 쉬기 위해 어느 한 곳에 멈췄는데 그 순간 용왕의 아들은 돌미륵으로 변하였고, 왕자를 따르던 수많은 고기 역시 굳어져 돌이 되어 일대가 돌밭으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그 머무른 자리가 바로 지금의 만어사 미륵전 자리이며, 미륵전 아래에는 많은 돌무지가 깔려 있는데 두들겨 보면 맑은 쇳소리가 나기 때문에 종석鐘石이라고도 한다고 한다.
나석중 시인은 만어산 만어사에 갔다. 거기서 신령스런 돌밭을 목도했다. 까무러칠 듯 감탄했을 것이다. 그리고 전율의 감동을 시로 썼을 것이다. 돌을 섬기는 절을 보았다. 돌마다 부처님의 그림자가 어려 있는 것을 보았다. 너덜겅, 너덜겅 만 개가 넘는 돌이 된 물고기 떼. 미륵전에도 불상 대신 거대한 바위가 들어앉아 있다. 마치 고래 같다. 수많은 돌 물고기들이 뾰족하게 주둥이를 내밀고 닜는 것처럼 보인다. 주둥이를 내밀고 설법을 경청한다. 돌이 돌을 섬기고, 돌이 수행을 하고, 돌마다 불심이 서려 있고, 스님과 부처도 돌을 귀하게 여긴다. 그리하여 만어사 돌밭은 나석중 시인을 만나서 「밀양」이라는 시로 탄생을 했다. (p. 시 114/ 론 127-129) (장인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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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집 『노루귀』에서, 2023. 4. 20. <도서출판 b> 펴냄
* 나석중/ 1938년 전북 김제 출생, 2005년 시집『숨소리』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저녁이 슬그머니』『목마른 돌』『외로움에게 미안하다』『풀꽃독경』『물의 혀』『촉감』『나는 그대를 쓰네』등, 미니시집『추자도 연가』『모자는 죄가 없다』, 디카시집(전자)『라떼』『그리움의 거리』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