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자각몽/ 김경린

검지 정숙자 2023. 4. 12. 01:31

 

    자각몽

 

    김경린

 

 

  잠을 잤다

 

  입술에 모래알이 다닥다닥 붙은 물집이 생겼다

  하얗게 뒤덮는 눈이 내리는데

  꿈속이었다

 

  눈 위에 갈색 솜뭉치가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사냥개 두 마리가 솜뭉치를 물었다 흔들었다를 반복했다

 

  동물을 사랑하니까

 

  그렇다고 죽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관절이 빠지면 잠에서 깨어났다

  꽃도 공포가 되는 걸까

 

  솜뭉치가 붉은 꽃으로 변할 때 알았다 너도 개라는 걸

  언제까지 꿈만 꿀 거냐고 물었다 개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움직이지 않는 입

 

  번지는 꽃물이 눈동자를 물들였다

  꽃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손안에서 뭉크러지는 꽃, 아팠다 현실처럼

 

  그러나 꿈은 계속되고

    -전문-

 

  해설> 한 문장: 인지하지 못했거나 인정하지 못했던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적나라하게 객관화하여 반추할 수 있도록 하는 이 꿈이야말로 시적 자아가 갖는 또 하나의 거울이다. "언제까지 꿈만 꿀 거냐고" 하는 개의 질문과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움직이지 않는 입"은 자신과 현실에 대해 핸들링하지 못하는 상태에 대한 자책과 추궁 그리고 무력과 체념의 자동화 작용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대화이며 일종의 자기검열이다.

  "손안에서 뭉크러지는 꽃'은 통각의 실감을 전할 뿐 아니라 무방비 상태에서 가해를 당하고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자신의 실제를 응시하도록 한다. 게다가 "하얗게 뒤덮는 눈이 내리는" 배경과 그런 눈 위에 "이리저리 굴러다녔"던 존재로 인해 비극성은 배가된다. 순수와 그 순수를 가능케 했던 결백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갑작스러운 공격과 무감각한 살해의 과정은 역으로 상상 속에서나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꿈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나'가 어린 시절 입게 된 정신적 외상은 의식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 극도의 공포, 불안, 결핍과 같은 정서들은 불수의근처럼 통제할 수 없으며 가연성 물질처럼 위험하기에 무의식 저 깊은 곳으로 은폐된다. 그러나 스스로 대면하거나 다루지 못하고 회피하고 보류시켜버린 이 감정들은 예기치 못한 순간마다 가공할 위력으로 출현하게 된다. 이 콤플렉스들은 의식의 영역에 떠오르지 못하고 도저한 무의식의 영역에 잠재해있다가 꿈의 형식을 빌려 귀환하는 것이다. (p. 시 72-73/ 론 151-152) (신수진/ 문학평론가)  

   

   -----------------

  * 시집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비가 왔다』에서/ 2023. 3. 27. <시산맥사> 펴냄

  * 김경린/ 경기 여주 출생, 2017년 『시산맥』으로 등단. 시집『유령으로 나는 서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