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젖은 미농지 같은 얼굴로/ 염창권

검지 정숙자 2023. 4. 2. 15:40

    

  젖은 미농지 같은 얼굴로

 

  염창권

 

 

  싸늘해진 갯벌에 첫눈이 다녀갔다,

 

  어둠이 내린 뒤 색채는 곧 뭉개졌다. 내렸다 녹으면서 쌓이는 이 하염없읍ㅁ, 그 얇아진 시간 뒤의 넌 처처에 흩어져 있다, 이처럼 간단없이 떠도는 입김 아래

 

  홀연히

  이마를 드러낸, 이번 생의 까닭 없음!

 

  세상을 비추ㅓ낼 듯 투명한 적 있으나

  너는 늘 거기 있다 없어진 채로였다

  그처럼 생이 지나갔다, 다를 바가 없었다

 

  미농지의 얼굴에 주름이 흘러내린다

 

  반투명의 세상을 베끼려고 했으나 회오하듯 찢어버린 면지로 너풀대는, 냉증의 그늘에서 나는 입을 닫는다

 

  창가에 쏟아낸 시간은 주르륵······,

  멀지 않다. 

    -전문(p. 9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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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半年刊誌『한국시인』 2023년 Vol. 04 <신작시조> 에서

  * 염창권/ 1990년 ⟪동아일보⟫ 시조 부문 & 1996년 ⟪서울신문⟫ 시 부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한밤의 우편취급소』『오후의 시차』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