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박재열_루이즈 글릭과 내면 고백의 언어(발췌)/ 행복 : 루이즈 글릭

검지 정숙자 2023. 3. 31. 23:37

<루이즈 글릭: 미국.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

 

    행복

 

    루이즈 글릭(Louise Cluck 1943~ )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얀 침대 위에 누워 있죠.

  아침이에요. 저들은 곧

  깨겠죠.

  침대 테이블에는 백합

  꽃병이 있죠. 햇빛이

  그 꽃들 목구멍에 고이죠.

  남자가 조용히 그러나 그녀 입 깊숙이

  여자의 이름을 불러줄 것처럼

  여자 쪽으로 돌아눕죠.

  창문 문지방에는

  새가 한 번,

  두 번 불러보죠.

  그러자 여자가 뒤척이고 몸엔

  남자의 숨결이 가득 고이죠.

 

  눈을 떴어요. 절 보고 계시는군요.

  바로 이 방 위로

  해가 미끄러져 가네요.

  거울을 만들려고

  당신 얼굴을 들이대면서

  당신은 말하죠, 당신 얼굴 봐요.

  당신 참 조용하시네요. 불타는 수레바퀴가

  유유히 우리 위로 지나가네요.

      -전문-

 

 

  루이즈 글릭(Louise Cluck 1943~ )과 내면 고백의 언어(발췌) _박재열/ 시인, 경북대 명예교수

  앞 연에서 화자는 신혼부부 같은 한 부부의 방을 들여다봅니다. 방안에는 햇빛이 넘치고 꽂아둔 백합의 목구멍엔 햇살이 고입니다. "남자가 조용히 그러나 그녀 입 깊숙이/ 여자의 이름을 불러줄 것" 같습니다. "새가 한 번,/ 두 번 불러" 본 뒤 "여자가 뒤척이면" 그녀의 몸엔 "남자의 숨결이 가득" 고입니다. 남녀의 숨결이 하나가 되어 남녀의 몸에 같이 퍼져 있습니다. 그것은 행복과 일심동체와 은밀한 관능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입니다. 두 번째 연에서 화자는 여자가 됩니다. 여자는 눈을 떠보니 남자가 자기를 보고 있습니다. 남자는 '내 얼굴이 당신이 봐야 할 거울이오.' 라고 말한 듯합니다. 그들이 조금 조용해질 때 그들 위로 불타는 수레바퀴가 지나갑니다. 울컥 다가드는 사랑의 뜨거움을 암시한 것일까요? (p. 시 260/ 론 260-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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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시 전문지 『사이펀』 2023-봄(28)호 <문학특강-지상중계/ 향가로부터 노벨문학상으로> 에서        

  * 박재열/ 시인, 경북대 명예교수/ 본 원고는 세계한글작가대회의 일환으로 경주 <문정헌>에서 열린 박재열 교수 초청특강 원고를 그대로 옮겨온다. (下)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