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몽돌/ 최진자
돌아온 몽돌
최진자
천년을 사랑하고 그리워
미움으로 깎이고 구르고 굴러 학동 해변
파도와 부딪쳐 아름다운 음파소리
이제는 눈감아도 괜찮겠지
목욕하고 바닷바람에 몸 말려
염 화장에 뽀얀 얼굴 빛날 때
외갓집 왔던 어린 아이린
예쁜 돌멩이 한 쌍을 가슴에 품고
몽돌 소리 귀에 담아 미국으로 갔다
거친 파도가 쳐도
은은한 달빛에도
소리가 멎은 적막한 바닷가
비행기 타고 태평양 건넜던 검고 하얀 바둑돌
외로웠던 이민생활 아픔의 기억으로
애처로운 마음에 한려해상공원으로 돌아왔다
제자리로 돌아온 몽돌
모래알 될 때까지
파도에 몸을 뒹굴며 다시 노래 부른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이 시는 2018년에 보도된 한 기사를 바탕으로 쓰였다. 미국의 열네 살 소녀 아이린이 부산에 사는 외할머니를 만나러 한국의 외갓집에 왔다가 경남 거제의 학동흑진주몽돌해수욕장에 가족과 함께 들렀던 모양이다. 학동흑진주몽돌해변은 몽돌이 파도에 부딪히는 소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에 꼽히기도 한 곳이다. 아이린은 그곳에서 한려해상공원의 몽돌을 보고 너무 예뻐서 몽돌 두 개를 집어 왔는데 뒤늦게 엄마가 그 사실을 알고 몽돌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아이린에게 설명하고 학동 해변의 몽돌이 '반출 금지'라는 사실도 알려준 것이다. 어머니에게 몽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에 아이린은 회할머니에게 몽돌을 제자리에 돌려놓아 달라고 부탁하며 죄송하다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몽돌을 작은 상자에 정성스럽게 넣어 놓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어이린의 외할머니가 그 상자를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우편으로 부쳤는데 아이린의 편지는 영어로 쓰였지만 '몽돌을 가져가서 죄송합니다'라는 문장은 마지막에 한글로 쓰여 있었다. 잘못을 시인하고 바로잡으려고 한 아이린의 마음이 예쁘기도 하고 몽돌을 몰래 가져가는 관광객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이 미담을 언론에 알린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아이린의 외할머니는 아이린이 몽돌을 가져갔다가 어머니한테 설교를 듣고 울었다며 "몽돌을 돌려주라고 편지와 함께 한국에 두고 가서 대신 보낸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略···
몽돌해변에 익숙해졌을 몽돌을 아이린이 낯선 미국으로 데려가는 행위를 이 시는 "이민생활의 아픔"과 겹쳐 놓는다. 아이린 가족도 이민자 가족이므로 적절한 비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낯선 곳의 바닷가는 "거친 파도가 쳐도/ 은은한 달빛에도/ 소리가 멎은 적막한 바닷가"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몽돌에게 그런 것처럼 아이린의 가족에게 미국에서의 이민 생활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몽돌의 미국행을 통해 이 시는 "외로웠던 이민생활 아픔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몽돌을 "한려해상공원으로 택배로 보내"는 마음은 자신들의 외로웠던 이민생활의 아픔을 잊지 않은 "애처로움"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시의 주체는 추측한다. "제자리로 돌아온 몽돌"이 "모래알 될 때까지/ 파도에 몸을 뒹굴며 다시 노래 부른다"는 이 시의 상상은 고향을 떠나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바람을 실은 것이기도 하겠다. (p. 시 24-25/ 론 127···略···129) (이경수/ 문학평론가)
-----------------------------
* 시집 『집으로 오는 그림자』에서/ 2023. 3. 10. <깊은샘> 펴냄
* 최진자/ 경기 김포 출생, 2017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하얀 불꽃』『신포동에 가면』//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입선, 최진자 서화전(경인미술관), 제35회 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 서예부문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