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신원철_상상의 자유와 절제된 시 쓰기(발췌)/ 이번 생은 나비가 되는 환각 : 최도선

검지 정숙자 2023. 3. 20. 20:54

 

    이번 생은 나비가 되는 환각

 

    최도선

 

 

  엄마는 아침마다 죽음을 사러 나간다

  착한 목화밭 마을이 기다리고 있다면서

  이제는 뒤쫓아 나설 기운도 없이

  여름이 지나며 봄 신발은 다 닳았다

  하얀 여름꽃들의 전송 받으며 흰빛 들판

  떠나도 좋겠다던 입안이 말라가고 있다

 

  저녁 무렵 순경 손에 끌려 돌아온 엄마

  주머니 안에 애벌레가 서넛 들어 있다

  급하게 탱자나무 화분을 주문했다

  화분이 도착하는 동안 수반에 상추를 담고

  그 위에 애벌레를 풀어 놓았다

  잎 갉아 먹는 소리, 초벌 소나기 같은

 

  탱자잎을 먹으며 우화를 꿈꾸는 동안

  엄마는 잠시 낮잠에 들고

  번데기가 말갛게 변해가고 있었다

 

  밖에서 앰뷸런스 소리 들려왔다

    -전문-

 

  ▶ 상상의 자유와  절제된 시 쓰기(발췌) _신원철/ 시인 · 강원대 교수

  세편을 시조로 선보이다가 모습을 드러낸 이 시에서는 시조가 보여줄 수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치매가 든 엄마는 아침부터 목화밭을 찾아서 집을 나선다. 하얀 여름꽃들의 전송, 하얀 벌판은 환상이면서 노화의 색깔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젊음은 목화밭의 추억을 가지도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가출했던 어머니가 저녁에 순경의 손을 잡고 돌아온다. 어머니의 주머니에는 애벌레가 몇 마리 들어 있다. 그리고 그 애벌레를 수반에 넣고 탱자나무에 올리고 어머니는 낮잠에 드신다. 이런 상황을 찬찬히 묘사하고 있는데 밖에서 앰뷸런스 소리가 들려온다. 시의 분위기는 어둡지도 않고 밝지도 않다. 치매에 든 어머니와 꼬물대며 자라는 애벌레는 같이 맞물리고 있다. 어머니는 잠시 낮잠에 들고 애벌레는 그새 번데기로 화하고 있다. 이 시는 평생 고생하시다가 늘그막에 치매에 든 어머니와 나방이 애벌레가 동일화되고 있는 데에서 매력이 있다. 단순하게 시에 표현된 것만 보아서는 어머니가 길을 잃었다가 돌아오고 벌레 몇 마리가 오글거리는 정도이지만 그 어머니의 생도 결코 벌레와 다르지 않았다. 아마도 힘들게 살았던 어머니 자꾸 집을 나가는 이유는 물론 정신이 없어서 그러하겠지만 평생을 갇혀 살아온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은 본능적 욕구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순경의 손에 끌려 돌아온 어머니의 주머니에 새로운 생명체인 벌레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p. 시  182/ 론 194-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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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과창작』 2023-봄(177)호 <신작 소시집/ 신작시/ 신작시 조명> 에서

  * 최도선/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1993년『현대시학』 소시집 발표 후 자유시 활동, 시집『나비는  비에 젖지 않는다』『겨울기억』『서른아홉 나연 씨』『그 남자의 손』, 평론집『숨김과 관능의 미학』

  * 신원철/ 2003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세상을 사랑하는 법』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