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물/ 김광기

검지 정숙자 2023. 3. 20. 02:31

 

   

 

    김광기

 

 

  모든 물들이 바다를 연모하지만 

  모두 바다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넓은 바다에 그렇게 소망했던, 드디어는

  한 몸의 물을 보태고 나면 어떤 의미가 되는 것인가.

  바다로 가지 못하고 더러는 남아서 허공 중에 떠 있기도 하고

  더 운이 없는 것은 곤두박질쳐서

  캄캄한 지하에 갇히기도 하지만

  끝내는 길어 올려져 누군가의 생명수가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피가 되어 생명을 이끌기도 하나니

  물이라고 꼭 바다로 가서

  소금물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의 세상에서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자양이 되고 물결이 되고, 

  다시 증발해서 수분이라는 명제를 안고 떠돌게 되더라도,

  누군가의 몸이 되고 누군가의 삶이 되는

  숨결의 의미만으로 성에 차지 않는 것인가.

  바다로 가든 바다로 가는 도중 증발해서

  이 공간을 떠돌든 더러는 깊이 잠기게 되든

  물은 영원히 물의 존재 의미로 남는 것,

  물이 의미 없이 마르거나 소멸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떠나도 우리가 있던 이 자리에

  더 소중한 의미로 남는 것이다.

     -전문(p. 1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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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과창작』 2023-봄(177)호 <중견 시인 신작시> 에서

   * 김광기/ 1995년 시집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발표, 시집 『시계 이빨』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