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아무도 없는 바깥/ 박복영

검지 정숙자 2023. 3. 7. 01:18

 

    아무도 없는 바깥

 

    박복영

 

 

  허물어지는 벽을 짚고

  낡은 문짝이 가쁜 숨을 쉬고 있다

  녹슨 경첩에 한쪽 어깨를 걸고

  번개 맞은 대추나무처럼 기울고 있다

  삐걱이는 문을 열면 누군가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습니까? 말힐 것만 같은데

  두리번거리는 햇살에선

  한동안 그늘로 앓아온 묵언이

  대답으로 쏟아지겠다

  마당엔 목젖처럼 튀어 오른 돌멩이가

  깊어지는 계절의 바닥을 물고 있으니

  버틴 날들이 그려내는

  빈집의 공복은 끝끝내 거미줄이다

  수채는 말라 허허한 바람만 들이고

  빛바랜 격자무늬 문짝은

  찢어진 흉터뿐이다

  저 낡아 삐뚤어진 오랜 문형門刑

  누군가 다시 부를 때까지

  온몸은 야위어갈 테지만 

  어쩌자고 문짝은 가슴을 열고

  바깥을 내보이는지

  내가 그 이름을 불러도 되겠습니까?

     -전문-

 

  해설> 한 문장: 위 시는 이번 시집의 표제작이 되었는데, 「아무도 없는 바깥」의 특이점은 '이탤릭체로 표기된 문장'에 있다. 예컨대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습니까"와 "내가 그 이름을 불러도 되겠습니까?" 위 두 문장이 이탤릭체로 태어났다. 물 한 모금과 바깥에서 엿보이는 그 이름을 호명하기를 요청하는 간절함에서 수액이라고는 한 방울도 남기지 못하고 메마른 "대추나무"의 앙상함이 두드러지고, 메마른 대추나무는 "낡은 문짝"이나 "녹슨 경첩"으로 내던져져, 온몸이 야위어가는 위태로움을 명시적으로 드러낸 것이 이 두 문 장(이탤릭체의 문장)으로 연결되어 있다.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습니까"에는 물기를, "내가 그 이름을 불러도 되겠습니까?"에는 바깥의 기척을 기다리는 화자의 절박함이 글자체의 변조로 두드러진다. 다만, 「아무도 없는 바깥」의 긍정성은 "묵언이 답으로 쏟아"질 것이라는 묵언수행의 과정이 노정된 점을 지나칠 수는 없는 것이다. (p. 시 22-23/ 론 131-132) (전해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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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아무도 없는 바깥』에서/ 2023. 3. 1. <달을쏘다> 펴냄

  * 박복영/북 군산 출생, 1997 『월간문학』 시 & 201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 2015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구겨진 편지』『햇살의 등뼈는 휘어지지 않는다』『거짓말처럼』『눈물의 멀미』『낙타와 밥그릇』 등, 시조집『바깥의 마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