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주희_은폐되는 시간의 업사이클링 혹은, 감자(발췌)/ 시와 감자 : 실비아 플라스
시와 감자
실비아 플라스(1932-1963, 31세)
가상의 선만 자주나타날 수 있는
질서 안에서, 의미를 분명히 하는 단어는 말 못 하게 막혀 있다.
명시된 선은 애매모호한 선을 배척하고,
흉악하게 번성한다. 감자와 돌처럼 강건하고,
뻔뻔하게, 약간의 여지를 준다면
단어와 선은 끝까지 버틴다. 그들이 철두철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생각해 봄은 종종 그들을
우아하고 균형감각 있게 바꾸기도 하지만),
그들이 끊임없이 나를 속인다는 것이다. 어찌 되는지,
그들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다.
시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감자는
질이 좋은 거대한 종이 위에
울퉁불퉁한 갈색을 다발로 모은다, 뭉툭한 돌도 마찬가지다.
-전문-
▶ 은폐되는 시간의 업사이클링 혹은, 감자(발췌)_ 고주희/ 시인
비록 나의 노동은 진부하여 전위적인 구석이 없다고 한들, 예술은 혹은 노동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삶에 항상 존재해 왔으며, 생각보다 밀접한 관계로 살고 있다. 예술노동이라는 말이 이론화된 어떤 단어로 존재한다면, 우리는 파편화된 조각들은 모두 잊고 겨우 일부의 어떤 진실만을 보게 될지 모른다. 결국, 숲을 보아야 함에도 나무 하나하나를 읽느라 본질이 무엇인지 길을 잃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개별적인 작가의 사유물로서의 노동이라는 쟁점과 매우 불특정하고 거대한 예술의 끝 간 데 없는 지점의 노동 사이에는 말로 구현해 내기 힘든 무엇이 존재하는 것만 같다. 우리가 직장 이야기를 하고 집단에서의 부당한 일을 성토하고 작가들이 모이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하는 것처럼 노동이라는 말도 성직자, 농부, 기술자, 예술가 등 그 누구가 되었든 삶의 진실한 모습을 다양하게 드러낼 뿐이다. 그럼에도 예술이라는 말에는 노동이라는 신성을 압도하는 주술적인 무엇이 깃들어 있다. 예술노동에 대한 자각과 자제는커녕 맥락 없는 글을 쓰는 지금, 나를 빛으로 이끄는 것은 실비아 플라스의 시. 「시와 감자」의 전문을 여기에 남김으로써 이 부족한 글에 비상 출구를 열어 둘까 한다. (p. 시 38/ 론 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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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2-가을(26)호 <issue_예술노동> 에서
* 고주희/ 2015년 『시와표현』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우리가 견딘 모든 것들이 사랑이라면』, 앤솔러지『시골시인-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