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 하자/ 나태주
좋은 날 하자
나태주
오늘도 해가 떴으니
좋은 날 하자
오늘도 꽃이 피고
꽃 위로 바람이 지나고
그렇지, 새들도 울어주니
좋은 날 하자
더구나 멀리 네가 있으니
더욱 좋은 날 하자.
-전문-
시인의 말> 전문: 벌써 52년 전 일인가 보다. 나의 시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은 1971년. 시상식을 치르고 며칠 뒤 심사위원 가운데 한 분인 박목월 선생을 용산구 원효로 4가 5번지 선생 댁으로 찾아뵌 일이 있다. 마침 선생은 댁에 집에 계셨고 새내기 시인을 위해 몇 가지 지침의 말씀을 주셨다.
"서울 같은 곳에는 올라오려고 하지 말고 시골에 눌러살면서 시나 열심히 쓰라"는 말씀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런 뒤에 후렴처럼 보태진 말이 "나 군도 앞으로 시집도 내고" 그런 말씀이셨다. 시력詩歷 52년에 창작 시집 50권이라! 너무 많은 책을 내고 만 것이다. 더러는 자기 모방과 동어 반복 같은 작품도 있다. 낭비라 하고 만용이라 해도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 나의 실패와 허물을 고스란히 받아안고 싶다.
스스로 나는 네 가지 마이너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시를 쓴 것. 집이 서울인 것. 초등학교 선생으로 일관한 것. 자동차 없이 산 것.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들이 메이저가 될 때까지 버티면서 살자고 그랬다. 그렇게 살아서 이제 팔순의 문턱에 이른 79세의 노인이 되었다.
진정 나의 마이너들은 메이저로 바뀌었는가? 얼마만큼 더 가보아야 한단 말인가?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신 박목월 선생에 비해 나는 턱없이 많이 살고 있을뿐더러 너무나 많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말았다. 이를 또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가는 데까지는 가보면서 더는 실수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 같은 시골내기의 시집을 샘터사에서 내준다니, 이것은 더할 수 없는 영광이요 고마움이다. 이 또한 오래 버티고 견딘 자에게 오는 차례가 아닌가 싶어 세월에게 무릎 꿇어 감사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샘터사 김성구 사장님과 고혁 편집장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적는다. ▩ (p. 시 296/ 론 7-9)
2023년 신춘
나태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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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좋은 날 하자』에서/ 2023. 1. 30. <샘터사> 펴냄
* 나태주/ 1945년 충남 서천 출생,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시 부문 등단, 첫 시집『대 숲 아래서』(1973) 이후, 『꽃을 보듯 너를 본다』『풀꽃』『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를 비롯하여 시집, 산문집, 시화집, 동화집 등 150여 권 출간, 2014년 공주시의 도움으로 나태주풀꽃문학관 · 풀꽃문학상 제정 ·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