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홀로서기 외 1편/ 김다솜

검지 정숙자 2023. 2. 25. 03:00

 

    홀로서기 외 1편

 

    김다솜

 

 

  하나뿐인 새끼를

  숲속에 맡기고 돌아서는

  붉은여우 어미 심장은 X레이로 찍으면

  연두색일까 단풍색일까

 

  무쇠처럼 단단한 심장을 가진 어미와 헤어진 새끼는 형제자매 없이 지금 어느 숲속으로 가고 있을까 어디선가 들리는 발자국 소리 놀라 바위 속으로 숨으려고 치타처럼 달려갔을까

 

  여우 어미는 사랑스런 새끼와 평생 살 수 없다는 

  이별 철학을 어느 대학교와 어떤 종교에서 배웠을까

 

  여우 새끼처럼 탯줄 홀로서기 보내고 싶으나 보내지 못한 한숨들숨 캥거루족 있으리라 아장아장 걷다 언제쯤 홀로서기 할까 혼자 잘 살면 홀로 서기일까 부모님 돌아가셔야 홀로서기일까

 

  거대한 숲속 무서워

  정든 어미 곁을 떠나기 싫어

  자꾸 매달리는 새끼에게 어서 가

  어서 가라고 어미는 앞발로 툭, 툭, 툭.

              -전문(p.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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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도 나뭇가지의 법

 

 

  완두콩만한 푸른 눈동자가

  굵어진다며 알 솎기 부탁을 받았다

  매달린 송이들 중 두 송이만 남기란다

  그리고 보랏빛 구슬들이 많이 굵거나

  작은 것부터 떼어내라며 부탁, 부탁을 한다,

  그게 알 솎기의 법, 어느 로스쿨이며 법대에서

  배운 형법이며 민법, 수사법, 은유법인지

  그 법에서 절대 벗어나면 안 된단다

  고만고만한 것들 중 어느 것을 보내고

  남겨야 하는지 어떤 것이든 솎아 내야 하는···

  포도 앞에서 쪽가위를 들고 곁눈질을 한다

  비정규직, 명퇴, 실직의 쪽가위가 생각이 났다

  잘리기 싫어도 잘리고나면 바닥이지만

  바닥에서 다시 뿌리내리고 꽃을 피우고

  밤이슬 먹은 도토리가 바닥으로 떨어질 때

  저 멀리 언덕에서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 듣는

  그들도 법, 법의 하루를 보내다 잠든 사람처럼

  주머니 없는 수의를 입은 채 박스에서

  박스로 달콤한 여정을 떠난다

      -전문(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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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저 우주적 도둑을 잡다』에서/ 2022. 10. 30. <지혜> 펴냄

  * 김다솜/ 경북 문경 출생, 2015년『리토피아』로 등단, 시집『나를 두고 나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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