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좁교가 간다 외 1편/ 이경교

검지 정숙자 2023. 2. 22. 02:05

 

    좁교가 간다 외 1편

 

    이경교

 

 

  좁교란 이름은 종교와 비슷하지만, 경교와도 같은 돌림자다 물론 좁교는 내 동생이 아니다 네팔 산간 오지 야크와 물소의 튀기가 좁교다 좁교는 평생 일만 하도록 만들어진 노동 기계다 노동 기계? 그럼 좁교는 정말 나를 닮았나? 좁교는 번식을 할 수 없는 돌연변이다 짐을 산처럼 잔뜩 싣고 저기 좁교가 간다 좁교는 사랑을 위해 사는 게 아니다 순한 눈망울 굴리며 거친 숨 내뿜으며 좁교는 일만 하다가 죽는다

 

  왜 좁교는 하필 나와 같은 돌림자인가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하지만 어느 땐 내가 짐을 잔뜩 지고 산비탈을 오른다 나는 좁교가 아닌데 어깨가 무겁다 짐도 지지 않았는데 숨이 차다 좁교는 핏줄처럼 내 곁에 붙어 있다 좁교는 꿈길까지 나를 따라다닌다 좁교는 들리지 않는 내 울음이다

 

  저기 내가 울면서 비탈길을 오른다 무게에 짓눌려 어깨가 휘었다 눈물 그렁그렁, 좁교의 슬픈 눈이 나를 바라본다 내가 좁교를 보며 눈물을 흘리듯 좁교는 나만 보면 운다 우리의 눈물은 투명하게 번져 서로의 볼을 적신다

    -전문(p. 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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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일忌日

 

 

  신혼의 남편은 징용에 끌려가고 남편은 해가 가도 소식이 없었지 자식도 없이 강물에 몸을 던진 큰어머니는 아버지의 첫 부인이었지 그날이 광복 사흘 전이었지 

 

  큰어머니 기일이면 아버지는 독방에서 밤을 보냈지, 두 번째 아내인 울 엄마*는 그녀가 불쌍하다고 제사상을 차렸지

 

  어린 시절, 독방 문을 열면 두런두런, 아버지는 누군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을까, 아버지 들어가도 돼유? 문밖의 어둠이 무서워 울먹이면 아버지는 나를 꼬옥 안아 주었지

 

  아버지와 함께 잠든 방, 향불이 사위고 나면 흰옷 입은 큰어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했지, 젊고 예쁜 손길이었지 그 꿈이 깰까 봐 나는 눈을 뜨지 않았지

   -전문(p. 23)

 

   * 1933년생, 열여덟에 스물여섯 홀아비와 결혼하여 5남매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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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나는 죽은 사람이다』에서/ 2023. 2. 17. <걷는사람> 펴냄

 이경교/ 충남 서산 출생, 1986년『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모래의 시』『목련을 읽는 순서』『장미도 월식을 아는가』등, 산문집『청춘서간』『장강유랑』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