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박지우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박지우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얘기한다 영화를 보다가 비에 대해 얘기하고 모네 그림을 보다가 초경을 한 아이에 대해 얘기하다가 커피 속에서 문득 튀어나온 노랫말을 흥얼거리다가 한 계절을 넘기고 숙녀가 된 아이의 바다도 넘긴다 잉크 묻은 눈빛이 길어진다
거울 속에서 노는 강아지가 있어요 환각일까요
여전히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아무렇게나 얘기한다 시간은 점일까 선일까 강물을 시간이라 할 수 있을까 인터넷 검색 순위를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오늘을 넘긴다 빤히, 들여다보이는 비밀을 묻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거실 구피가 새끼를 낳았다 또 제 새끼를 먹어 치울까
어제는 누구에게 어제일까 밤은 어제일까 내일일까 누군가의 기억 위를 걷는다 나무에서 쏟아지는 새의 울음소리, 그들이 흔들흔들 뾰족해진다
언어 속에서 사실은 죽는다
-전문-
해설> 한 문장: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얘기해야 한다. 의식이 거두지 못한 것 같은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란 진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가장 빠르고 직설적인 방식이며(라캉), 이로써 기의 없는 기표 혹은 빗금 쳐진 기표라는 '의미의 순수한 잠재력'은 폭발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얘기할 때, 우리는 문장의 빈 공간에서 활성화되는 놀라운 간극들을 마주하게 된다. 거미줄에 얽힌 상징계의 의미 맥락들은 차라리 '결여' 혹은 '잉여'를 통해 해체되거나 녹슬어 버린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뜬금없이 비에 대해 얘기를 하고, 모네 그림을 보다가 초경을 한 아이 얘기를 하며,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한 계절을 넘기고 숙녀가 되어버린 아이 얘기를 한다. 그 모든 얘기 들에는 여전히 잉크가 묻어 있고 그것은 바다처럼 마르지 않는다. 어쩌면 거울 속에서 노는 강아지도 단지 얘기에 불과한 '환각'일지 모르겠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아무렇게나 얘기"하고 있다. 얼핏 봐도 무의미한 내용이다. '시간은 점일까 아니면 선일까' 혹은 '강물을 시간이라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적절하지 않으며 도무지 효울적이지도 실용적이지도 않기 때문. 그러나 그 질문은 현실을 다른 축으로 나누고 구조화한다는 뜻에서 일종의 윤리적 '반성'이다. 우리가 인터넷 검색 순위를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오늘을 넘긴다면 키워드에 내속하는 전도된 현실을 간과해버리는 것이고, 이미 물신화된 사회적 관계를 은폐하는 것과 동일하다. 확실히 제 새끼를 먹어 치우는 '구피'는 크로노스의 다른 이름이고 이를 무력화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아무것도 아닌 것'의 의미 없는 나타남이 아닐까. (p. 시 18-19/ 론 124-125) (박성현/ 시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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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우산들』에서/ 2023. 2. 5. <한국문연> 펴냄
* 박지우/ 충북 옥천 출생, 성장-유성에서, 현재-부천, 2014년『시사사』로 등단, 시집『롤리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