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장철환_ 후유증: 어떤 마음에 대해(발췌)/ 필(必) : 채상우

검지 정숙자 2023. 2. 18. 02:00

 

   

 

    채상우

 

 

  구 년이 지나갔다

  구 년이 지나갔다

 

  구 년이 지나고 보니

  구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다만 지난 구 년이 하루만 같다

  하루  같은 구 년이 꼬박 구 년 동안 지나갔다

 

  구 년이 지나고 보니

  할 일도 없어졌고 살 일도 없어졌다

 

  구 년만 같은 하루가 끝나지 않는다

     - 『必』, 파란, 2021, p.88) 전문

 

 

  후유증: 어떤 마음에 대해 _ 칼에 찔린 마음(발췌)_ 장철환/ 문학평론가

  "구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말자. 아마 '어떤 일'이 있었을 것이고, 확증할 수는 없지만, 그 일은 "평생 심장에 꽂힌 칼(「시인의 말」)이 되어 인생을 '어떤 일' 이전과 이후의 시기로 갈랐을 것이다. "지난 구 년이 하루만 같다"는 말은 일차적으로 '어떤 일' 이후 분투하고 매진했던 시기를 압축한다. "구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그러나 하염없이 지나간 것이다. 하염없다고 말한 까닭은 그 시간 동안 어떤 역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건이 아니라 후유증이다.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어떤 상실이 생겼으니 말이다. 첫 번째 상실은 "할 일"이다. "할 일"은 "구 년" 전의 '어떤 일'로 인해 생긴 것이고, "구 년"이 빠르게 흐른 것도 이 일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복수 같은 것. 그런데 "구 년"의 시간이 그것을 사라지게 한 것이다. 이는 동기의 상실을 의미한다. "할 힐"은 시적 주체의 입장에서는 "살 일"의 동기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번째 상실, 곧 "살 일"의 상실은 필연처럼 보인다. 이것은 첫 번째 후유증이 낳은 후유증이다. 말하자면, 후유증의 후유증인 것이다. 그 결과 "구 년만 같은 하루가 끝나지 않는다"는 시간의 역설이 남는다. 이것이 멜랑꼴리인지 무상無常의 깨달음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리튬처럼 결심으로 충전된 그가 지금 "알루미늄처럼 하릴없다"(「必」, p.77)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p. 시 212-213/ 론 21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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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파란』 2022-여름(25)호 <criticism> 에서

  * 장철환2011년 『현대시』로 평론 부문 등단, 저서『돔덴의 시간』『김소월 시의 리듬 연구』『영원한 시작』(공저), 『당신이 알아야 할  한국인 10』(공저), 『이상 문학의 재인식(공저),『라깡 정신분석의 핵심 개념들』(공역)